첫 책 출간 후기
춘삼월
요 며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통에 춘삼월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아직도 두꺼운 파카를 목까지 채우고 다니게 된다.
'겨울은 언제 끝나려나... 봄은 또 언제 오려나...'
해마다 이 무렵이면 금방 올 듯 오지 않는 봄의 여신을 기다리며 애를 태웠던 기억을 잊어버린 채, 또다시 생애 첫 봄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햇살 사이로 봄꽃이 만발할, 그런 봄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라는 단어에는 그런 설렘과 기다림이 있기에, 그런 봄날에 나의 첫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지난해 가을 무렵,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서도 출간 시기를 묻는 담당자의 질문에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년 봄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출간을 서둘러 준비했다면 그 시기를 좀 더 앞당길 수도 있었지만 애초부터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것 또한 첫 책을 준비하는 신인작가로서의 로망(?)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답이기도 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상당히 많은 일들이 쌓여있었기 때문에 책을 위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한 탓이었고, 두 번째는 내 글이 겨울보다는 봄에 좀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가 봄빛에 어울리는 책을 만들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혹시 출간 시기가 미뤄지더라도 봄의 풍경들을 떠올리면서 준비하면 조금이나마 봄을 닮은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봄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고, 솔직히 말해서 내겐 너무 힘들고 피곤한 시간들이었다. 한 번은 어쩌다가 우연히 Siri 버튼을 잘못 누른 상태에서 "아이고 힘들다" 하고 혼잣말을 했는데 이 말을 듣고 있던 Siri 가 나에게 독려의 말을 해주기도 했다.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사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인데, 그게 다른 글도 아니고 '첫 책'이다 보니 이중삼중으로 힘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가을 겨울이 어떤 표정으로 지나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두 계절을 보내고 봄을 기다리기까지의 그 시간들은 내게 있어 또 하나의 도전이었고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감사한 마음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편집자를 고생시킬 줄은 미처 몰랐다.
담당 편집자님과 최종 교정본을 주고받던 날, 처음으로 내지에 적혀 있는 출간일을 확인했다. 3월이라는 걸 본 순간, 지난가을에 내가 했던 말들과 함께, 내년 봄쯤에 책이 나올 거라고 써 놓았던 브런치 글이 생각났다. 다른 느낌은 없었다. 이제 드디어 원고를 털었다는 홀가분함보다는 계획한 대로 이루어냈다는 안도감이 컸다. 어떤 '일'을 끝냈을 때와는 달리 더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은 언제든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새롭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쓴 글이야 언제든 쉽게 수정할 수 있지만 책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토씨 하나, 조사 하나를 바꾸기 전에도 한참 동안 고민했다. 그렇다 보니 책 제목 하나, 표지 하나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편집자를 고생시킬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하나 내 의견을 존중해서 꼼꼼하게 작업해준 담당 편집자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70221104&priceTab=01#tab_comp
봄, 그리고 내 책
그렇게 만든 첫 책이 드디어 인터넷서점에 등록된 걸 확인했는데, 실은 나도 아직 책을 받아보지 못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책 두께감은 어떤지, 무게는 또 어떤지, 직접 만져보지도 못 한 첫 책을 인터넷에서 먼저 만나게 되다니! 전국 서점에 유통되어 판매되기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제주에는 대형 서점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처럼 대형서점에 가서 내 책을 물끄러미 바라볼만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못 보는 대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더 쳐다보고 집어주었으면 좋겠다.
책이 나오면 보내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내 책은 언제 오려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내 첫 번째 책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직 3월, 봄은 내 책만큼이나 천천히 오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