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날.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동생으로부터 걸려온 영상통화에 할머니가 등장했다. 어제 저녁 서울에 있는 동생한테 부모님 용돈을 대신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 만나게 되면 영상통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었기 때문이다.
연로하셔서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는 근래 들어 어디가 편찮으시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부쩍 수척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야윈 얼굴에 하얀 백발의 노인이지만 그래도 참 고운 우리 외할머니.
상투적인 안부 인사를 주고받다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지은아, 내가 너한테 부탁이 있다."
할머니가 내게 부탁할 일이라는 게 대체 어떤 것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네, 뭔데요? 말씀하세요!"
나는 귀가 어두운 할머니가 잘 들으실 수 있도록 한껏 소리 높여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결혼하는 것 좀 보자."
우리 할머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건 처음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할머니~ 천년만년 사셔야죠~! 하하하"
나는 할머니께 어떤 약속도 해드릴 수 없어 죄송하다는 말 대신에,
그저 오래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 옆에 있던 엄마가 말을 보태고 나서려던 찰나에, 눈치 빠른 동생이 영상통화를 마무리 지어준 덕분에 더 난처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아직 철이 덜 든 서른다섯의 자식에게 어버이날은 괜스레 더 무거워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