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게

어떤 날의 재회 두 번째 이야기

by 자유지은

이 글은 어떤 날의 재회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의 뒷 이야기입니다. 링크의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그와 인터뷰를 한 지도 3일이 지났다. 원고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이제 몇 줄이라도 쓰기 시작해야 마감일을 지킨다는 압박감에 책상 앞에 앉았지만 한 시간째 조급증에 걸린 듯 쉴 새 없이 깜빡거리는 '커서'만 노려보고 있다.


원고를 쓰기 위해 그와의 인터뷰를 다시 떠올려 보지만, 그 날의 모든 순간들이 삼류 소설처럼 느껴졌다. 인터뷰보다는 '악몽 같은 재회 스토리'에 가까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서로가 서로에게 프로답지 못 했으며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그를 어떻게 포장해서 써야 할지' 고민스러웠으니까.


'아휴, 정말 못 쓰겠다. 좀 멋진 면이 있어야 포장을 해주지.'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주관적인 생각 속에 갇히는 것 같아 녹음 파일을 다시 틀었다.



"자신이 기획한 공연이 매진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미리 보내준 질문지에도 있었던, 너무나도 일반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듯 계속해서 엉뚱한 대답을 했다.


"윤지 네가 이 소식을 들었으면 함께 기뻐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우리가 함께였다면 같이 축하파티라도 했을 텐데 하는 생각 했어."


능청을 부리는 건지 진심인 건지 헷갈릴 정도로 담담하고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의 낮고 맑은 음색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또다시 그의 서글서글한 눈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착한 웃음. 그것만큼은 변함없었다.


"좀 더 진지한 대답을 기대했는데, 다른 건 없나요?"


"없는데? 그냥 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네가 보고 싶었어."


'이런 그를 순정파 로멘티스트 기획자로 포장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 콘셉트로 간다면 원고를 터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만 그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애썼던 내 마음의 방어선이 위태로워질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어떻게 떠났는데…….'


또다시 그가 건네는 달콤함에 현혹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계속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그때 날 버린 네가 많이 미웠거든? 근데 이상하게 원망하진 못 하겠더라.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 그땐 내가 너무 부족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한참 집중해서 곱씹어 듣고 있었는데, 녹음 파일이 재생되다 말고 전화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발신자 번호 뒷자리가 낯익은 숫자로 되어 었었다. 직감적으로 그의 전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받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받기로 했다. 이제 와서 내가 그를 피할 이유는 없으니까.


"여보세요."


"윤지야, 나 지금 너네 집 앞에 왔는데 잠깐 나올래?"


"우리 집 앞이라고? 우리 집 어떻게 알았어?"


"아직 내 목소리 기억해줘서 고맙네."


"우리 집 어떻게 알았냐고 묻잖아."


"너네 편집장한테 물어보니까 알려주던데? 밖에 비도 오는데 커피라도 한 잔 하자. 기다릴게."


'뚜. 뚜. 뚜...'


전화를 침대 위로 툭 던져놓고 커튼을 열었다.

자동차 불빛에 반짝거리는 이슬비가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칫! 누가 나갈 줄 알고.'


커튼을 닫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집 앞에 서 있는 그의 차가 머릿속을 스쳤다.


'기다릴 테면 기다리라지.'


창 밖으로 빗방울이 굵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한층 깊어진 가을이 짙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원래 연작으로 쓸 생각은 없었는데 제가 세상에 낳아놓은 이 소설 속의 두 사람이 저를 너무 괴롭혀서 어쩌지 못해 뒷 이야기를 썼어요. 잠시 휴식 차 여행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모두들 따뜻한 추석 연휴 보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