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의 재회
버스가 수원 역사 앞을 지나쳐갈 무렵부터 차창 밖에 빗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곧 내려야 하는데...'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나로서는 갑작스레 내리는 비가 별로 달갑지 않았다. 나는 빗물이 들이칠까 봐 조심스레 창문을 열고 바깥을 살폈다.
'여전하구나. 여긴.'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와의 추억들 때문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그와 헤어진 지도 벌써 3년이다. 나는 그와의 이별 직후 이곳을 떠났지만 그는 아직 이 근처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그는 내게 성실하고 따뜻한 연인이었지만 나는 그의 사랑에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순간, 그의 침통한 표정에는 나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어려있었다.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 너를 위해 헌신했는데...'
그는 어쩌면 이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보란 듯이 자리를 박 차고 나가버렸으니까.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잘 헤어졌다고 안도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인터뷰 해오라는 편집장에게 그가 나의 전남친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자신은 더 없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내 이름 뒤에 그런 꼬리표를 붙이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내려온 길이었다. 형식적인 인터뷰 질문지는 이미 메일로 보내 놓았으니 한 시간만 잘 버티자며 마음 가득 기압을 불어넣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버스가 문화의 전당에 도착했다. 안내 음성에 놀라 황급히 내리고 보니 문화의 전당 앞에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요즘 그가 기획한 공연들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공연기획자로서 이름이 제법 알려지고 있었다.
로비로 들어가 관계자에게 인터뷰 약속이 되어 있다고 말하려던 찰나,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윤지?"
그는 내가 올 거라고 짐작했던 모양인지 별로 놀라는 기색 없이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뵙네요. 오늘은 인터뷰어로 왔어요. 인터뷰는 어디에서 진행.."
내 말을 도중에 끊더니 그가 말했다.
"넌 내가 안 반가운 모양이구나. 나는 너 보고 싶었는데."
그의 말은 그냥 듣기 좋은 소리, 입에 발린 소리처럼 들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인터뷰를 하러 와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똑같이 웃어줄 수밖에…….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를 몇 번씩 되내었다. 지금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 하는 순간이니까.
아무래도 이번 인터뷰는 예상대로 난이도 10을 찍을 것 같다. 이런 태도의 전남친을 매력적으로 포장해서 인터뷰 기사를 완성하려면 아마 유체이탈을 몇 번은 해야 할 테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소심한 작가입니다. ^^
매거진 [봄여름 가을 겨울]은 습작 삼아 쓰는 건데요,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해요.
제 자신이 워낙에 평온한 성격이다 보니 글에 갈등 요소를 넣는 게 쉽지 않네요.
아마 이번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재회는 썩 유쾌하지 못했을 거예요.
현실에서도 모든 만남이 아름답거나, 모든 재회가 낭만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지난번 글에도 썼지만, '연애하기 딱 좋은 가을'이에요.
아직 싱글이신 분들! 겨울이 오기 전에 좋은 인연 만나셔서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기도할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