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밤
'타닥타닥'
조개 익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지는 제부도 바닷가의 어느 조개구이집.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선배 커플이 청첩장을 준다며 2살 후배인 나와 친구를 불러 모은 자리였다. 원래는 선배의 단골집인 이자카야에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내부 공사를 이유로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좀 더 멀리까지 나오게 됐다. 하지만 집에 돌아갈 걱정보다는 오랜만에 맡는 바다 내음에 살짝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캄캄해져서 바다가 보이지도 않는데, 우리는 굳이 가게 안 쪽에 마련된 편한 자리를 고사하고 노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어쩌면 이 불편함을 선택한 건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원하는 것이었다. 근처 어딜 가도 조개구이 맛은 비슷할 테지만 일단 실내에 들어가면 파도 소리와 바다 냄새마저 느낄 수 없다는 것 만으로도 불편한 노천 테이블과 의자를 감수할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선배가 청첩장을 꺼내 슬며시 내밀었다. 연분홍색 봉투 한 귀퉁이를 잡은 선배의 손끝에도 비슷한 색깔의 그라데이션 네일아트가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선배의 낯선 모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어요?"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청첩장을 대충 보고 집어넣으며 물었다.
"음... 자기야, 우리 어떻게 만났다고 해야 되지?"
선배가 예비 남편을 바라보며 대신 대답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우린, 길 위에서 만났어요."
한마디 말에 벌써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달콤함이 전해져 왔다. 친구와 나는 선배의 예비 신랑을 향해 격한 리액션을 보내며 다음 말을 제촉했다.
"어머! 길 위에서 어떻게요?"
"각자 따로 여행하던 중이었는데, 어떤 여자가 이런 길바닥에 앉아서 훌쩍거리고 있는 거예요."
"오~ 너무 영화 같다! 근데 그때 선배는 왜 울고 있었던 거예요?"
이번엔 내가 선배한테 질문을 돌렸다. 선배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나 그때 소매치기당해서 지갑이랑 여권까지 다 잃어버렸거든. 내가 너무 방심했던 거지. 외국에서 갑자기 그런 일 당하니까 정말 눈 앞이 캄캄하더라고. 그때 내 앞에 나타난 슈퍼맨 하고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선배의 얘기가 끝나자 그 날의 슈퍼맨이었던 예비 신랑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때 저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고 기차표 사놓고 기다리던 중이라 별로 도와줄만한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누군가 도와주겠지 싶어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한 10분 지켜봤는데 엉엉 우는 것도 아니고 처량하게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어서 그런지 다들 쳐다보기만 하고 말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행 스케줄 다 뒤로 미루고 도와주게 된 거예요. 한국 돌아가면 밥 한 번 산다길래 연락처를 주긴 했는데 진짜 연락이 온 거예요. 기대도 안 했었는데..."
그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는 사랑과 배려,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그의 옆에 앉은 선배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깊이 사랑받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둘이 정말 잘 어울려요. 선배하고 안 지가 벌써 10년인데 이렇게 행복한 모습 보니까 정말 부러울 정도예요."
진심 가득한 내 말에 선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때 사랑이 올 줄은 몰랐었어. 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니까."
그녀의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듣고 난 후라, 유난히 선배의 말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밤이 깊어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이미 자리를 떠나고 거리 전체가 조용해져 있었다. 이제 조개 굽는 소리 대신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에 몇몇 커플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도 잠시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총총히 불을 밝힌 밤거리.
나지막한 파도 소리와 바다 내음.
보드랍고 선선한 바람.
딱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다.
그래, 가을이다.
모두들...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찬란한 가을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사랑을 씁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