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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Jun 25. 2018

식용으로 태어난 개

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도 있나요?

"어머~ 외국 개처럼 생겼어요. 종이 뭐예요?


베로나를 데리고 산책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단순히 귀엽다거나 인형같이 생겼다는 말은 너무 흔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데, 외국 개처럼 생겼다는 말속에는 '고급스럽게 생겼다'(또는 비싸 보인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그러기에 견종을 묻는 그들의 태도에는 사뭇 진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냥 믹스견이에요."하고 대답하면 그들은 이내 실망한 얼굴을 하고 휙 가버린다. 설마 하겠지만 의외로 흔한 일이고 내겐 아주 익숙한 일이다.그래서 한 번은 내 멋대로 그럴듯한 견종을 지어내서 말했더니 사람들은 뭘 알기라도 하는 냥 반색하며 한참 동안이나 베로나를 보다가 밝은 얼굴로 지나갔다. 나는 그런 태도로 개를 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구태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가문의 자손인지를 기준으로 차별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 집안의 자손인지 궁금하다. 그러면서 백인들이 인종 차별할 때는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지 알까 모르겠다. 다 똑같은 인간 종인 것처럼 모두 똑같은 개가 아닌가?!


베로나는 세상에 하나 뿐인 믹스견이다


혹여 그런 사람들이 베로나의 출신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지 기대가 된다. 내가 책에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베로나는 경기도에 있는 모 보호소에서 데려왔다. 그때 보호소 소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 아이는 어쩌다가 보호소에 오게 되었는지 여쭤봤다. 그때 소장님께서는 난감한 얼굴을 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


베로나를 처음 만났던 날


"아, 이거,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 하며 여간 조심스러워하는 게 아니었다.


"괜찮아요. 뭔데요? 편하게 얘기해주세요." 하고 재차 물어 듣게 된 말은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는다.


"이 앞에 지나가는데, 근처에 있는 개농장 쪽에서 아장아장 걸어 나오더라고요. 얘 하고 형제 둘이 다 같이 새끼 때 들어왔어요. 개농장 출신이라고 하면 찝찝하다고 안 데려가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혹시 그럴까 봐 조심스러워서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자꾸 물어보시니까..."   


개농장 출신이면 어때서요?


대답을 듣고 나서 마음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똑같은 보호소 안에 있으면서도 인기 견종과 믹스견의 인기가 다른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그 믹스견 중에서도 베로나처럼 개농장 출신은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가 더 힘들다는 얘기다. 나는 그 무서운 꼬리표를 떼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이라도 더 세련되게 지어주고 싶어 고심 끝에 '베로나'라는 이탈리아 지명을 붙여주었다. 비록 개농장에서 태어났지만 어느 펫숍에서 값비싸게 파는 개들과 다름없이 사랑스러운 반려견으로 살고 있다.




이따금씩, 베로나가 태어난 곳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무겁다. 그나마 베로나의 형제들은 개농장을 빠져나와 목숨이라도 구했지만, 아마 베로나의 부모, 친구들은 이미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만약 베로나가 어려서 그곳을 탈출하지 못했다면 분명 '식용으로 도살' 당했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과연 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이 있을까?



베로나가 태어난 곳,
개농장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개고기를 팔거나 먹는 사람들은 '식용견'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식용으로 키워지는 견종이 따로 있는 것처럼 오해를 하게 만든다. 또한 '반려견'과는 전혀 다르며 '식용'을 위해 정당하게 사육된 '축산물'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식용견'이라는 단어가 싫다. 베로나는 식용견 농장에서 태어났다. 우리 베로나 사진을 보고 먹음직스럽다고 느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반려견과 식용견은 다르지 않다. 모두 똑같이 소중한 생명일 뿐이다.

 

얼마 전, 인천지법에서 '식용 목적의 개 도살'에 대한 위법 판결이 나왔다. 이것은 현행 동물보호법에 근거한 첫 위법 판결로써 그 의미가 있다. 개나 고양이는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동물보호법을 적용해 위법 판결이 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행 동물보호법은 모호한 표현이 많아 재판관의 해석에 따라 판결이 재각기 다르게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법안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지난주에는 때마침 표창원 의원이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는 동물보호법에 큰 관심이 없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선거시즌에만 관심 끌기용 반려동물 공약을 내놓고, 선거가 끝나면 관심을 끄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동물보호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 겨우 14,000명 정도가 참여했으니 갈 길이 멀다. 나는 베로나의 친구들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이 청원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 고양이 도살 금지 법안 통과를 위한 국민청원에 동참해주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그저 이렇게 글 한 번 써서 조금이라도 알려주는 것 뿐이라 개인사로 정신 없는 상황이지만 사력을 다해 글을 썼습니다. 혹시 여러분이 반려동물을 사랑하신다면, 아니, 생명의 소중함에 귀천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신다면 이 국민청원에 함께 동참해주세요.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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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가 왜 불법인지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주세요. 

https://brunch.co.kr/@flappergirl/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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