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맞은편에 남편이 앉아있다. 정말 오랜만에 애들 다 재우고 남편과 한 방에서 만났다. 남편은 뚜뚜를 재우고 나왔고 나는 솔이를 재우고 휴대폰을 하다 뚜뚜 이유식이 배달되었다는 카톡을 받고 나와 이 자리에 앉았다. 남편의 오래된 노트북 소리와 내 맥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흐른다. 남편과 단 둘이 있기는 또 얼마만인가.
사실 나오기 전에 솔이 옆에 누워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었다. 허니 자요? 남편은 양치 중이라고 답했다. 오예 오랜만에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겠군, 내일이 월요일이든 말든 그래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냐는 생각으로 남편 방 문을 열자마자 웃통 깔 생각부터 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있을 남편에게 곧장 직진해야지_ 그랬는데 나는 지금 남편의 오래된 노트북 소리를 들으며 요즘 노트북들은 가격이 얼마나 하나, 남동생 졸업 선물로 노트북을 하나 사야겠다는 말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토요일 밤을 좋아한다. 평일에는 회사 일에 집안일에 일상에 지쳐 무드고 뭐고 배부르면 자기 바쁘지만 그래도 아직 젊은(?) 우리에게 뜨거운 포옹은 늘 우리를 설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날 부담이 없는 토요일 밤이 우리에겐 찬스인데 어제는 내가 솔이를 재우다 기절해버렸다. 유일한 찬스인 토요일이 내게는 육아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어젯밤 남편은 나를 새벽 두 시까지 기다리다 푸시업 백 개, 턱걸이 백 개를 하고 잠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뚜뚜 낮잠 재우며 같이 곯아떨어졌다. 덕분에 나는 솔이와 아파트 산책도 했고 넘들이 다 밟은 눈으로 눈싸움도 하고 들어왔다. 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도 사 왔다.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 식후 땡으로 기분 좋은 저녁을 보내고 지금 이렇게 단 둘이 만났다.
웃통을 벗을 생각을 했다고 적는 부분에서 괜히 얼굴에 열이 올라 창문을 열 생각으로 남편에게 물었다. 혹시 덥냐고_ 그러고는 일어나 베란다 창문 쪽으로 가는데 남편이 말했다. 나 지금 바지 안 입고 있다고.
으악 _ 남편의 허연 허벅다리를 보는데 못 볼 걸 본 사람 마냥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왜 이리 미친놈처럼 앉아있냐고 (사실 변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기겁하며 웃어댔다. 남편은 피부가 정말 흰 사람이다. 사각팬티만 입고 허벅다리를 내놓은 채 앉아있는 백돼지를 본 듯한 그 형상이 지워지지 않는데 그 상황이 너무 웃겨 우리 부부는 껄껄대며 많이 웃었다. 이렇게 남편과 단 둘이 있으면 말도 안 되는 걸로도 잘 웃고 행복한데 같이 육아만 하면 그놈의 서열 때문에 늘 군대 선임같이 말이 나온다.
뚜뚜를 재우며 방이 너무 더워 땀이 뻘뻘 났다고 한다. 그래서 뚜뚜를 안은 채로 바지를 벗고 그러곤 컴퓨터 앞에 앉았다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그저 웃기기만 하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길 없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이번 한 주도 잘 마무리했구나 생각한다. 기분 좋게 일요일 밤을 보내고 내일 또 파이팅 해야지. 김 허니님, 내일 눈 길 조심히 잘 다녀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