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오늘은 안 싸웠지만, 근래 들어 남편과 싸움이 잦다. 예전에는 나 혼자 따다닥 쏘아붙이고 끝났는데 요즘은 남편도 나처럼 따다닥 거린다. 결혼 7년 만에 진짜 싸움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
나는 예전 레퍼토리대로 할 말 안 할 말 다 하는데 남편은 사회생활 짬이 좀 생겼는지 얼마나 유창하게 쏘아붙이는지 모른다. 그놈의 황지 사장이랑 권 이사가 얼마나 우리 남편을 갈궜으면 순둥순둥 하던 내 남편이 요렇게 서울 사람처럼 새침하고 냉정해졌는지 서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매 번 남편이 하는 말이 있는데 '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이다. 이 말을 들으면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해 오늘을 보내지만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소모적인 하루를 보내는 남편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저 말을 들으면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런데 지난주 싸움에서는 꼬리를 내리다 말았다. 그리고 되받아쳤다.
' 허니만 최선을 다 해? 나는 뭐 안 그래? '
싸움의 시작은 뚜뚜의 젖병이었다. 잘 준비를 다 하고 집에 불도 다 껐는데 남편이 뚜뚜 분유를 먹이고 거실로 나왔다. 들고 나온 젖병 하나, 소독기 안에 하나, 어? 나머지 하나는 어딨지? 어제부터 안 보였는데.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안방 침대 어딘가에서 어젯밤에 먹인 젖병을 찾아들고 나왔다.
남편은 뚜뚜를 재우며 기저귀를 몇 번을 가는지 모른다. 좀 뒤척이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좀 뒤척이면 또 기저귀를 갈아준다. 뚜뚜가 젖은 기저귀 때문에 잠 못 드는 예민한 아이도 아닌데 남편은 그게 무슨 규칙인 것처럼 하룻밤 새 네다섯 개의 기저귀를 간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뚜뚜도 남편도 잘 자면 다행이다. 근데 남편은 꼭 그 기저귀를 다 펼쳐서 아무 데다 던져놓는다. 하나는 이불 밑에 들어가 있고 하나는 침대 구석에 들어가 있고 하나는 뚜뚜가 깔고 자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새벽에 먹인 젖병은 무슨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아무 데나 놔둬서 아침마다 찾는 게 일이다. 못 찾은 날은 오늘처럼 며칠을 분유가 썩어도 모른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야무지지 않을까? ( 사실 나는 남편이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잔소리에 뒤치다꺼리에, 무슨 애 하나 재운다고 유세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나는 뭐 솔이 안 재워봤나. 아침이면 널브러진 기저귀에 젖병에 자면서 옷은 왜 그리 많이 갈아입히는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걸로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끔 주말에 허니가 좀 치워라고 핀잔을 주긴 하지만 허니 버릇을 못 고쳐 안달 난 건 아니다. 나쁜 의도 없이 그렇게 살아온 습관이란 걸 잘 안다. 신혼 초에는 팬티를 벗어서 냉장고 위에 올려두기도 했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은 남편이 찾아들고 나온 '어제'의 젖병을 씻는데 벌컥 화가 올라왔다. 젖병 뚜껑을 열었을 때 썩은 냄새가 내 코를 찌르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 허니, 부탁 하나만 하겠는데. 제발 기저귀 갈고 좀 똘똘 말아서 한 군데 놔두고 젖병도 먹이고 제발 눈에 보이는데 좀 놔줘' 이렇게 말한 거 같은데 아마 이보다 '제발'이라는 말을 더 많이 한 거 같긴 하다. 나는 이렇게 담백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말만 부탁이지 짜증 섞인 불만인걸 남편은 단번에 알아채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싱크대 물을 잠그고 말했다. 내 말 들었어? _ 그렇게 그날 밤 나는 싱크대 앞에서, 남편은 정수기 앞에 서서 싸웠다. 뚜뚜랑 솔이랑 미끄럼틀을 타다가 엄마 아빠 싸우는 거냐고 물었고 솔 이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남편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말에 더 화가 났고 남편은 그게 부탁이냐고 무슨 부탁을 그렇게 하냐고 따졌다. 나는 솔직히 이런 걸 내가 부탁해야 하냐고, 애 하나 재운다고 유세 떠냐고 따졌고 남편은 뭐라고 했더라. 주로 나는 내가 한 말만 기억해서 그런지 잘 떠오르진 않지만 남편도 물러서지 않았다.
솔이는 그 사이 색종이로 무언가를 만들어 적어왔다. [ 엄마 아빠 그만 싸워. 싸울 일도 아니야 ] 엄마 칸, 아빠 칸을 나눠 우리 보고 자꾸 뭔가를 적으라고 해서 싸움이 흐지부지 됐지만 솔이는 끈질기게 지금 마음을 적으라고 했다. 남편은 뚜뚜를 보느라 등을 돌린 채 있었지만 나는 솔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색종이에 이렇게 적었다.
'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그 색종이는 아직도 솔이 책장 제일 높은 칸에 세워져 있다. 그 편지를 볼 때마다 솔이에게 고맙고, 내가 적은 글을 아빠 앞에서 큰소리를 읊어대는 바람에 남편은 방을 나가며 내 손을 잡고 화해하자라는 말을 했다. 그쯤 되니 왜 싸웠는지도 생각이 안 나고 이겼는지 졌는지도 모를 마음이었다.
가끔 우리 둘만 있던 신혼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참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