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남편의 카톡을 보았을까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by 뚜솔윤베씨

솔이 초등학교 입학 기념 가족 여행. 정말 오랜만에 가족끼리 호텔에 다녀왔다. 호텔에서 무얼 한다기보다는 그 시간만큼은 몸도 마음도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많이 웃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리 윤윤이 들도 좋은 것에 대한 경험과 기준을 쌓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장 비싼 방을 예약하면서도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남편은 잘했다고 분명 말하겠지만, 큰돈을 쓸 때면 언제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일까 일단 예약부터 했는데 뒤늦게 확인하니 환불이 안 되는 방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정말 재미있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다 와야지, 괜한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괜한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금토일. 이왕 노는 김에 수영장도 두 번 데리고 가려고 금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먼저 숙소로 향했다. 남편은 퇴근 후에 호텔로 바로 오기로 했다. 오전 수업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집에 들어가 가방을 싸고 아이들을 차례로 하원시켰다.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있는 윤윤이 들을 데리고 병원엘 들렀다가 호텔로 출발했다. 고작 두 밤 자는데 짐은 왜 이리 많은지, 냉장고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 간식거리며 공부거리며 뭐 하나 빼놓지 않고 꾹꾹 담아 온 나도 참 힘들게 산다 싶을 때 윤성이는 안아달라고 칭얼거렸고, 윤솔이는 수영장엘 언제 가냐고 백 번도 더 물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호텔방에 들어섰을 때 _ 우와 _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집에 돌아와 모든 짐을 내려놓고 차례차례 옷가지를 벗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창밖으로 탁 트인 전망을 마주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다. 창문도 안 열었는데 맑은 공기라도 마시듯 크게 숨을 마시고 내셨다. 딱 지금의 기분으로 2박 3일을 보내고 싶었다.



아이들과 서둘러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저만치 복도를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출산 3년 차에 그래도 회복이란 걸 하고 있구나 내 아랫배를 바라보며 기분 좋게 걸었다. 오롯이 엄마로 행복한 날들이다.






윤솔이는 금방 물에 뛰어들어 잠수도 하고 놀았고, 그동안 발만 담그던 윤성이도 웬일인지 내게 안겨서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꽤나 신이 났는지 혼자서 성큼성큼 걷다가 물을 마시기도 했다. 금방 긴장을 풀고 나름의 놀이거리를 찾아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 모습을 담을 겨를도 없이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고, 간간이 남편에게 연락해 아이들의 모습을 전했다. 이 행복한 순간으로 당신도 얼른 들어오라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나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있다고.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에 들어왔을 때 남편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방 키가 내 주머니에 있으니 로비 어디엔가 있겠지 하는 마음에 서둘러 챙겨 나갔다. 수영장 옆 세탁실에 앉아있는 남편을 보았을 때 언제나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차례로 윤윤이들이 아빠에게로 가 안겼다. 수영하는 내내 아빠를 찾은 건 아이들이 아니고 나라는 말을 뒤로한 채 천천히 세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방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나, 두 아이 이렇게 넷이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안정감이 드디어 도착했구나 안도하며 넓은 방문을 열었다.








남편은 퇴근길에 많이 지쳤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광역버스를 처음 탔는데 서지도 못하게 하고 내리기 전엔 후다닥 뛰어내려야 했다며, 금요일 퇴근길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예민하고 작은 다툼도 있었다고 한다. 진이 다 빠진 것 같은 남편은 저녁 식사를 하며 맥주 두 잔을 시켜 아주 행복하게 마셨다. 너무 맛있다고 맛만 보라고 내게 권할 때 나는 정말 맛만 봤다. 술이라고는 평생 입에도 안 대고 사는 것이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목만 축이고 남편에게 다시 맥주를 건넸다. 남편의 행복도 좋았지만 수영을 마치고 오물오물 저녁밥을 먹는 윤윤이 들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엄마로 살 때 느끼는 행복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하루하루를 보냈고, 짧았던 여행이 끝이 났다. 유난히 이번 여행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고 낭비하는 시간 없이 알차게 잘 놀았다. 쉬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유익하면서도 행복했으니 더 바랄 것 없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일요일 윤솔이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먹고 도서관에 들러 다 같이 책을 읽었다. 윤솔이도 윤성이도 각자 좋아하는 책을 골랐고, 남편도 한 귀퉁이에서 꽤나 집중해서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좀이 쑤신 윤성이에게 중장비 책을 읽고 또 읽어 주며 너도 얼른 자라렴. 누나처럼 혼자서 글을 읽게 되는 날 우리 다 같이 도서관 나들이하자 속으로 말했다. 그런 날이 오면 정말 좋을 거 같았다. 나도 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모두 차에서 잠이 들었다. 남편은 영어 동요를 끄고 자장가처럼 조용한 피아노곡을 틀어주었고 나도 곧 잠이 쏟아질 듯했지만 이 행복한 여행의 마무리를 남편과 함께 느끼고 싶어 눈을 감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차에 있을 때, 특히 아이들이 다 잠들고 둘이서 대화할 수 있을 때 느끼는 따뜻함, 안정감은 지금 나의 일상에서 드문 일이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럴 땐 엄마 딱지 떼어내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오롯이 나로 느끼는 모든 걸 전할 수 있으니 편안하다. 삶의 여정을 함께 하는 사람. 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사람.



......



지금 생각해 보면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너무나 완벽해 오히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빠뜨리고 왔거나 무언가 잊고 있는 듯한 느낌이 스치긴 했지만 아이들을 돌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부모로서 살아가는 삶이란 원래 그런 걸 수도 있겠구나 대수롭지 않게 외면했다. 아이들 이 다 크고 나면 농담처럼 우리 인생을 살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미래를 그리면서 정말 매일매일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여행 마지막 날, 오후 4시쯤 익숙한 거리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고, 잠시 요가원에 들러 주차를 했다. 잉크를 바꿨는데도 종이가 안 나오는 프린터를 고치기 위해 남편은 요가원으로 올라갔다. 차에 있는 동안 계속 피아노곡을 들으라며 휴대폰을 놔두고 갔을 때, 그때는 남편도 나도 몰랐다.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줄은.




그때 나는 왜 남편의 카톡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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