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아침에 카레를 만들어 뒀으니 저녁밥 걱정은 없다. 속절없이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시간 속에 묻혀버리기 전에 기록하자 마음먹으며 서둘러 식탁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이 말을 언제 했더라 한참을 생각해야 할 만큼 지난날들이 흐려지고 있지만, 영영 잃을 순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카톡 방에도 남겼듯이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선택해야 하고,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뒤, 남편의 카톡을 천천히 읽으며 어떤 기분이 들었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일단 내 카메라로 그 채팅방의 글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걸로 남편에게 따져 묻든 아니든 그 글들을 읽는 것 자체에 꽤나 큰 충격이었다. 남편 회사에는 가깝게 지내는 이성 동료가 한 명 있다. 나이도 같고 같은 팀이라 많은 일을 함께 한다. 남편 회사 동료의 성별까지 내가 선택할 순 없지만 그래도 아내 입장에서 마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진 못 했던 것도 사실이다.
손 과장은 워낙 여유 있는 집에서 사랑받고 자라 그늘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남편이 했을 때는 마치 본능처럼 자격지심이 질투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감추는 것에 늘 익숙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 최면을 걸 듯 말했다. 그렇구나, 어떻게 하면 우리 솔이를 그렇게 키우지? 그저 엄마로서 인생의 모든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남편의 회사 이야기도 그 선에 끝을 맺었다. 하지만 내내 마음속에서 떠올라 부럽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부분에서는 무슨 나병환자라도 되는 것 마냥 머릿속에 떠오른 나의 아버지를 지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가시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 켠이 아프기도 했다.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 텐데도 나는 항상 그게 내 약점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런 손 과장과 남편은 직장 동료라기보다는 남녀 사이에도 우정이 존재한다고 떠들어대며 애정을 키우는 대학생들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남편과 가장 처음 대화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었고, 늦은 새벽 출장을 가거나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보면서도 수시로 둘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뭐 특별한 말도 없었다. 그냥 분리수거하고 왔다, 윤윤이들이 이렇게 논다, 피곤해서 코를 곯았다 같은 시시콜콜하고 일상적인 대화들. 퇴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사장이랑 이런 대화를 했다, 같이 회사 상사를 욕하거나 일하는 사람이나 안 하는 사람이나 벌어가는 돈은 똑같다며 동병상련의 이야기들.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고 편해 보여서 질투가 났던 걸까, 아니면 정말 이상한 상황을 내가 마주한 걸까 아직도 혼란스럽지만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와 남편의 채팅방에 들어가 보았다. 아침에 일찍 출근한 남편의 모닝 인사, 퇴근한다고 걸려 오는 전화 한 통. 이런 연락을 주고받은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대화를 잊고 살아갔다. 어련히 회사에서 요가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 각자의 역할로 가정에, 아이들에게 충실히 살아가는 거겠지 생각했었다. 좀 힘든 날들이 있어도 뭐 별 수가 있나, 남들도 다 이렇게 사나 한 마디 내뱉고 일상을 살아가기 바빴던 지난날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워낙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편은 연애 때부터 신혼, 그리고 첫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수시로 연락을 했고 어딜 가는지, 무얼 먹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연락을 했었다. 나는 꽤나 무심한 편이지만 그런 남편의 재잘거림을 언제나 사랑스럽게 받아들였고 종종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난날이다. 결혼 9년 차.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은 생일 편지에나 한 번, 뽀뽀나 스킨십도 그런 날에나 한 번 _ 잘 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진짜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긴 했었다.
얼마 전 남편과 손 과장은 둘이서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따로 출국하고 입국 하긴 했지만 그곳에서도 내내 연락을 주고받았고 더 편하고 친밀해 보였다. 각자의 호텔로 돌아가는 길 그림자에 비친 실루엣 사진을 보낸 걸 봤을 때쯤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더 깊은 관계까지 생각할 순 없었지만 분명 뉴스 기사에서나 보던 오피스 와이프라는 게 확실했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우리 아이들을 좋아했던 손 과장이 떠올랐다. 랜선이 모나 여자 동료의 아이한테도 표하기 어려운 애정을 윤윤이들에게 쏟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이들 사진을 손 과장에게 보내고 둘이 같이 귀여워했다. 싱가포르 출장에서 돌아온 날 아침, 나 대신 윤윤이들을 등원시킨 남편은 그날도 아이들의 등 하원 사진을 찍어 손 과장에게 보냈다. 요가 수업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잘 갔나 궁금하고 걱정됐었는데 나에게도 전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의 사진이 그 여자에게 닿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분노가 일었다. 그날 늦은 시간 시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해, 출장은 잘 갔다 왔냐며 어찌 돌아와서 전화도 한 통 없냐고 서운해하셨는데 남편은 온종일 손 과장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이걸 뒤늦게 알고 나서 남편에게 따져 물었을 때 정말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의 대화에는 서로에 대한 따뜻함이 가득했다. 다른 회사 동료를 찍은 사진 작은 귀퉁이에 손 과장의 뒤통수가 있는 걸 캡처해 사진을 보내기도 했고 늦은 대화를 나누며 끝맺을 때는 이 카톡 읽지 않고 잠들 기라며 애정 어린 말들을 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나와 남편은 각자 아이들 팔베개해 주며 너 나 할 것 없이 기절하며 잠들어 다음 날 저녁에 잠깐 얼굴을 마주치며 살아가는데 말이다.
한참을 손 과장과의 카톡을 보다가 도저히 차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문을 열었다. 이미 얼굴은 굳을 대로 굳어있었지만 아이들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요가원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두 시간째 프린터를 고치고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는 않았다. 굳어있는 얼굴로 남편과 마주했을 때 가슴이 타올랐다. 내가 본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남아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 둘의 관계가 나에게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그날 저녁, 아이들을 얼른 재우고 대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참고 또 참았다. 나의 차가운 기운이 불편했는지 남편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었고 당장이라도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이라 정말 꾹 참고 또 참았다.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말하고 싶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하지만 결국엔 참아내지 못했다.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놀이를 할 때쯤 남편에게 잠시 대화 좀 하자고 말했고, 솔이에게는 미리 이야기했다. 엄마 아빠 대화 좀 하고 오겠다고.
방 문을 닫고 나서 남편에게 물었다. 이게 다 뭐냐고, 무슨 사이냐고, 회사 동료들끼리는 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냐고, 이렇게 다 친하게 지내냐고 또 다른 누구랑 이렇게 친한 거냐고. 남편은 늘 내가 따져 물을 땐 대답이 없다. 억울해 보이긴 하는데 내가 묻는 질문엔 전혀 대답을 하지 못한다. 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확신과 배신감에 차올랐다. 그동안 그렇게 열을 다해 다니던 회사가 결국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하기 위한 거였냐고 몰아붙였다. 명백한 외도라고, 뭘 더 했는지는 몰라도 이건 분명한 정서적 외도라고 말했다. 이 말을 하면서도 사실 정서적 외도만이 길 바라기도 했었다. 무슨 일이 더 있다면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화를 냈지만 터질 것 같은 내 마음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남편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 큰 분노와 화가 생겼다.
남편은 내게 지나친 상상을 한다고 했지만, 카톡 방에 남겨둔 둘의 대화에 대해선 어떠한 핑계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이들의 사진이 왜 그 여자에게 가 있는 거며, 그렇게 바쁜 와중에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연락하는 사람이 왜 아내가 아니고 손과 장인지, 변명도 하지 못했다. 회사 일 이야기도 아니고 시시콜콜 말도 안 되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왜 하필이면 이 사람이냐고 감정을 다스리고 물었을 때도 남편은 조용했다. 사실 그게 대답이었다. 할 말이 없는 것. 어떤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
그렇다. 결혼 9년 차. 둘째 출산 곧 3년 차. 남편의 마음은 이곳에 없었다. 차 안에서 그 카톡을 읽는 순간 나는 알았다. 남편의 어쭙잖은 변명 없이도, 남편의 침묵 없이도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걸.
그 뒤로 무슨 정신으로 아이들을 재웠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잠들자마자 거실로 나와 한참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있었다. 사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