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그대로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by 뚜솔윤베씨

월요일 밤을 요가원에서 보내고 다음 날 아이들이 등원한 시간 집에 들어갔다. 점심 먹고 하원하는 윤성이를 기다려 꼭 안아주고 지난밤 같이 있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최대한 울지 않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윤성이가 낮잠을 잔 뒤, 나는 소파에 앉았고 남편은 거실 반대쪽 벽에 등을 붙이고 서로 마주했다. 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그 햇살 아래에서 나눌 대화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스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배신감에 대해, 슬픔에 대해.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다 잘못했다고 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회사를 그만두라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면서도 남편의 표정은 뭐랄까 아무 슬픔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게 괘씸했던 걸까, 나는 아직 아무런 결정을 할 만큼 이성을 차리지 못했으면서도 아주 단호하게 시부모님들께 아이들을 부탁드려도 되는지 물어봐 달라고 말했다. 그 말은 이혼이라는 단어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남편도 알았다.


안절부절못하던 남편은 소파 옆으로 와 무릎을 꿇으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부모님들께 아이들을 잠시 맡기고 한 달, 아니 일주일 만이라도 둘이서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코웃음이었는지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 여자랑 가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우리 사이에 여행은 무슨 여행이며 기회는 또 무슨 기회인지 아주 차가운 냉소가 담긴 말들을 내뱉었다. 너랑 나랑은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할 거고, 그래도 아이들은 잘 커야 하니 _ 우리 친정은 여유가 없고 그래도 시부모님들이 여유가 되시니 꼭 여쭤봐달라고 했다. 이미 그때는 내 마음속에 이혼이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처럼.








그런데 진짜 그런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겁이라도 주려는 마음이었을까. 용서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그 말을 하고 솔이 하원 시간에 맞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늘 밤도 요가원에서 자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 힘없이 현관문을 걸어 나왔다. 이게 최선일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일까.



그렇게 남편 앞에서는 담담하게, 대담하게 이혼이라는 말을 해놓곤 차에 타자마자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어떠한 결정도 어떠한 말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이들을 어디다 맡긴단 말인가. 나의 전부인 아이들을 어디다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그렇게라도 남편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 건지, 혼란스러워 그저 눈물만 흐른다. 지금 흘리는 이 눈물의 이유가 뭘까.



다행히 솔이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쯤 눈물을 지울 수 있었고, 어색하지만 밝게 웃는 얼굴로 솔이를 맞이했다. 뭐야 엄마, 두 밤 자고 온다면서 어떻게 왔냐고 묻는 솔이에게 그저 웃으며 꼭 안아줬다. 집에 아이들 먹을 과일이 없으니 과일 좀 사야겠다는 생각, 간식 먹을 시간인데 아무것도 못 챙 겨와 배고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 솔이랑 가까운 분식집에 들러 솔이가 좋아하는 떡볶이와 튀김을 시켰다. 하루 안 봤는데도 어찌나 애가 탔는지 솔이도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그저 싱글벙글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린다. 어젯밤에 무얼 먹었는지 어떻게 잤는지, 윤성이가 어쩌고 아빠가 어쩌고 미주알고주알 쫑알쫑알 사랑스러운 솔이.


그쯤,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오늘은 집에 들어와 자라고.


남편의 카톡이 없었어도 솔이를 혼자서 떼놓고 다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차 안 가득 솔이가 좋아하는 과일들 윤성이가 좋아하는 포도를 사서 집으로 향했을 때 낮잠에서 깬 윤성이와 남편이 지하주차장을 서성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는데도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아이들은 나를 보며 해맑게 웃고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 울었는지 모르게 나도 따라 웃게 된다.



그때 엄마는 어떻게 우리들을 두고 떠나갈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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