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연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by 뚜솔윤베씨


이미 우리는 부부의 연은 다했다고 생각해, 그런데 참 이상하지? 사귀다 헤어지면 끝인데 부부는 서로의 연이 다해도 부모의 연이 남아있잖아.


이 말을 하면서도 참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담담해지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땐, 한없이 슬퍼졌다. 또 닫아버리고 있구나. 어떠한 것도 느끼지 않으려 도망치고 있구나 생각이 들 때쯤, 불현듯 남편에 대한 분노가 다시 타올랐다.


내가 이 가정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데 이걸 한순간에 무너뜨리다니. 내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리다니. 그 생각이 드니 눈물은커녕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외도를 한 아버지와 삶을 포기한 어머니를 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가정이 무너졌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와 불안을 일찍이 경험했고, 그 경험은 과거형이 아니라 언제나 모든 일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정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랐지만 결국에는 나도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식이기 때문에 혹여나 내가 어떠한 실수를 할까, 혹여나 나의 어떤 행동이 남편의 신뢰를 무너뜨릴까 봐 결벽증처럼 스스로를 단속하며 살았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이 싫어하는 남자 사람과의 관계는 다 정리했고 결혼 후에는 남자라고는 없고, 친구라고는 없는 그저 엄마로서만 아내로서만 기능하는 사람처럼 살았다. 대화할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 남편에게만 의지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것이 내 가정을 지키는 또 하나의 약속이라고 여길 만큼 남편에게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그게 답답하거나 억지로 참아내야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정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때의 안정감에 만족했고 정말 행복했다. 남편과 내가 서로 사랑하고 그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희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이렇게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나는 지금 아이들을 혼자서 어떻게 키우지, 아이들을 보내고 살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을 내가 겪었던 그 과정 속에 내려놓아야 하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니 _ 이 모든 상황에 분노가 일었다. 어떤 것도 우리 가정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자신했었는데 결국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여자로서 느끼는 배신감 따위는 하찮게 느껴진다.






그날 밤, 남편에게 말했다.


양가 부모님들께 지금 이 상황을 다 전하라고. 그리고 아들 잘못 키운 시부모님들이 내게 직접 사과하시라고 말했다. 친정엄마, 남동생, 오빠한테 전화해 사과하라고 말했다. 회사에도 다 말하고 그만두라고. 집에서 아이들만 돌보면서 평생 부끄러운 아빠로, 평생 사죄하면서 벌 받으면서 살라고 말했다. 부부의 연은 다했지만 부모의 연으로 아빠로서만 살아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롱하듯, 내가 한 말들 중에 하나라도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하냐고 다시 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일어났을 때 과연 나는 만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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