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이렇게 내 마음은 전쟁터인데 봄은 오고, 솔이 초등학교 입학 날이다. 내 소중한 딸의 첫 초등학교 입학식 _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미안한 건 아이들이다. 엄마 아빠가 헤어지니 마니 이런 대화를 하니, 아무리 숨어서 아이들 잘 때 한다지만 집안의 분위기라는 걸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는지. 솔이는 투정 없이 윤성이를 챙겨가며 논다. 애교도 부리고 일부러 말도 더 많이 건다. 안쓰럽고 미안하다. 최대한 아이들 앞에서 울지만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중인격이라도 갖춘 것 마냥 아이들 앞에서는 웃고 돌아서면 눈물 훔친다.
지난밤, 남편과 그런 대화를 나누고 밤을 지새웠다. 나는 마음이 무거우면 잠을 못 자는 편인데 며칠째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늦은 새벽까지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든다. 결국에 우리는 헤어질 텐데,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또 내 잘못은 없었는지 그런 쓸데없는 자책감에 젖는다. 그동안 너무 엄마로서만 최선을 다한다고 (사실 그것도 언제나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남편에게 소홀했던 건 아닌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남편의 잘못을 합리화하고픈 건 아닌지. 다 내 잘못인 건 같다는 생각에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라도 하면 마음이 한 결 나아질까? 하지만 말할 곳이 없다. 친정엄마에게는 또 다른 상처와 충격이 될 테고, 누군가에게는 가십거리로 남아 아이들에게 상처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나날인데 세상은 너무 고요하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새벽 소파에 앉아 있는데, 남편이 나왔다. 내게 와 물 한 잔을 건네며 돌아가는 남편 등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미안했다고, 그동안 너무 좋은 엄마가 되는 것만 생각하고 사느라 여자로서 당신에게 소홀했던 거 같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무슨 말이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는 사람 마냥 그 자리를 떠났지만 나는 오히려 속이 조금은 후련했다. 그렇게라도 이 일이 일어난 이유를 만들고 싶었는데,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내 탓으로 돌리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빨리 마음도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생각해 보면, 스무 살이 되고 진짜 연애라는 걸 한 이후부터 내 마음에 있었던 사람은 단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원혁 그리고 지금의 남편. 몇 번 다른 남자들과 짧게 만나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해서 만난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실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좋아해야 시작하고 그 마음이 다해야 끝을 맺을 수 있는 사람.
3년 정도 만난 원혁이가 마지막엔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좋긴 한데 뭔가 부족한 '
3년 동안 사랑한 연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이것이었다. 뭔가 부족하다는 말 _ 그래서였을까, 3년을 만났는데 헤어지고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마지막 말은 사실 아직도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헤어짐을 이겨내는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결국에 나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니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_ 남편과의 이 혼란스러운 시간들 속에서도 나는 내 딸은 절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잘못을 찾고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는 내 모습을 마주한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