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by 뚜솔윤베씨

솔이 입학식 아침.

왜 그랬을까. 아이들이 깨기 전, 나는 서있는 남편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볼을 대고 가만히 숨을 쉬었다. 남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느껴졌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이혼하게 당장 준비해라고 분노에 찬 말을 한 저녁을 뒤로하고 뒤에서 남편을 안으니 일주일 가까이한 숨도 못 잔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질 듯한 기분도 든다.


부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이 일은 화해의 섹스로도 해결할 수 없고, 어떠한 분위기 전환으로도 결국에는 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 생각이 스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솔이 입학식이다. 티 내지 말고 웃는 얼굴로 딸의 기쁨을 함께 축하하자. 되뇐다.





앞니 빠진 얼굴로 해맑게 웃는 솔이를 카메라에 담고 보니, 귀하고 소중하다. 내가 사랑하는 내 딸의 기쁨을 마주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하다. 그늘 없이 자라길, 부족한 것 없이 자라길, 언제나 가정 안에서 편히 쉬고 용기를 내길, 가족의 사랑으로 더 성장하길 늘 내가 바라던 대로, 늘 향하던 대로 삶이 그려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입학식이 끝나고 윤성이도 일찍 하원시켜, 가까운 쇼핑몰로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차 안에서 잠든 윤윤이들을 뒤로하고 피아노 연주곡이 흐른다. 내가 처음 남편의 카톡을 본 날도 이런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이 스친다. 만약 이혼을 한다고 해도, 내 삶은 지옥일 테지. 아이들을 혼자서 길러내는 수고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빠의 부재와 결손가정이 가지는 필연적인 결핍에 우리 아이들도 놓이겠지. 나처럼 일찍이 철들고 나처럼 의지할 곳이라곤 자신밖에 없다는 외로운 마음으로 자라겠지. 내 희생이 아이들에게 짐이 될 테고, 나의 사랑이 너무 버거워 종종 침묵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차마 이혼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다시금 남편을 용서하고 일상을 살아간다면,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현실에 숨이 막힐 것이다. 매일 그 여자가 있는 회사로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눈을 질끔 감을 테고, 온갖 상상에 몸부림치겠지. 미친 여자처럼 남편의 휴대폰을 뒤적이는 매일을 보내겠지. 둘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 나는 피해자가 된 기분인데, 매일매일 그 둘이 있는 상상을 하며 파괴적인 삶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과연 그 정신으로 내가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 삶은 어떤 선택지에서도 결국 지옥만 남는다는 기분이 든다. 내 사랑과 믿음을 저버린 남편과 삶의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 끝에 오열하게 된다. 살려달라고 읊조리게 된다. 살아오면서 생각했던 가장 큰 두려운 순간에 서 있는 기분이다.쇼핑몰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내리겠다고 했다. 울음을 참아낼 자신도 없었고 그렇다고 자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목놓아 울 자신도 없었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분명 아이들이 깨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점심도 먹고 웃음도 짓겠지만 지금은 흐르는 이 눈물을 막을 수가 없다.






한참을 울부짖다 차에 탔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회사는 언제 그만 둘 거냐고, 양가에는 언제 알릴 거냐고. 남편은 더듬거리며 2주 또는 3주라고 말했다. 그 말이 못 미더워 더 괘씸했다. 뭐든 다 하겠다 회사도 그만둘 테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하던 남편은 사라지고 시간 속에 잊히길 바라는 그의 이기적인 바람이 느껴져 너무 괘씸했다. 내 남은 삶은 지옥뿐인데 남편은 현실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치자 눈물이 메마른다. 다시 한번 말했다. 그 여자도 회사 그만두게 하라고, 그리고 회사에 내가 직접 말하겠다고. 아무 타격 없이 내 가정만 산산조각 날 순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고개 돌려 남편의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표정이었는진 알 순 없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이 도움의 요청이었다. 나를 이 지옥에서 제발 꺼내달라고. 어떤 것도 좋으니 제발 나를 숨 쉬게 해달라고. 어떤 제스처도 좋으니 지금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나중에 남편은 차에서의 이 대화를 사형선고라고 표현했지만,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내 감정 외엔 느낄 수 없는 완전한 타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날 나의 말들은 사실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대화를 끝맺지도 못하고 아이들이 깼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친 뒤라 그런지 솔이는 잠에서 깬 뒤에도 여전히 상기된 얼굴로 해맑게 웃는다. 팅팅 부은 눈으로 아무렇지 않게 솔이를 안으며 웃었다. 다시 한번 입학을 축하한다고. 오늘은 학교에 입고 갈 예쁜 옷 한 벌, 귀여운 학용품 좀 사자고 설레는 마음으로 솔이를 안았다. 그렇게 솔이 손을 잡고 쇼핑몰로 걸어가는 길, 조금 전에 앉아 짐승처럼 울었던 그곳을 지나친다. 그때의 맑은 하늘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푸른 하늘 아래를 딸의 손을 잡고 걷는다.






남편은 윤성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멀찍이 뒤따라오면서 아무 말이 없다. 쇼핑몰에 들러서도 점심을 먹지 않았고 솔이와 내가 쇼핑하는 동안 여기저기 배회하며 어두운 얼굴로 종종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에게는 언제나처럼 따뜻한 부모였지만 남편도 나도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힘없이 걸어 다녔다. 쇼핑을 끝내고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씩을 할 때도 말이 없었다. 새로 산 윤성이 레고에 모든 대화가 집중되고, 솔이가 새로 산 불빛이 나오는 작은 펜이 전부다. 이럴 때 아이들이 있어서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은 저녁에 잠깐 이야기하자고 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만 어떤 이야기도 사실 듣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의 대화는 결국 지금의 나 자신을 비참하게만 만드니까. 그저 이 상황에 전원을 꺼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