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남편에게 말했다. 축하한다고. 진심이었다.
늘 두려워했던 헤어짐 앞에 당당해지기로 한 모습을 보니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의 최선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고마웠다고.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인가.
남편의 긴 카톡 글에서 해로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내 마음속에 남은 건 이혼 소송이었다. cctv며 회사 사람들 인터뷰, 위치 추적 등 이런 단어들.
그런 단어들이 왜 그렇게 무섭게 다가왔을까, 진짜 외도를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된다면 분명 마주했을 단어들일텐데도 나는 마치 꿈에도 떠올려보지 않은 단어들을 마주한 것처럼 벌벌 떨기까지 했다.
왜?
남편의 지난날 최선을 들으며 내 지난날들을 떠올려본다. 비록 남편처럼 기록에 남아있진 않지만, 그걸 증명해 줄 어떠한 증인도 없지만, 내 삶을 담았던 카메라가 켜져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_ 나 역시 누구보다 뜨거웠다. 내 삶에 최선을 다했고 때론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나의 시간들을 증명할 길이 없다.
아이들을 키우며 5년을 가정주부로 살았고, 일을 시작한 지 이제 2년이 되었다. 그때도 지금도 늘 혼자라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더 욕심내지 않고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했다. 남편을 사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고 가정 안에서 가족들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내 몫을 다해 살았다.
하지만 너무 최선을 다 한 것도 문제가 될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든다. 남편 따라 진주, 사천, 서울로 옮겨오며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고 친구라고는 없었다. 열심히 아이 돌보고 퇴근하는 남편과 짧게나마 대화하는 순간이 제일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저 남편을 내내 기다리기만 한 게 회식 한 번 맘 편히 못하게 한 잘못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도 나가서 사람들도 좀 만나고 사회생활도 했으면 우리 생활이 이렇게 단조롭고 팍팍하게만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요가원을 열면서도 떼 돈을 벌어야지 보다, 나도 내 시간이 생겼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기쁨을 느꼈었다. 경제적으로도 남편에게만 짐을 주지 않아도 되고 더 건강하게 우리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전부였는데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결국엔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시간들을 증명할 길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남편의 글을 읽자마자 깊은 패배감에 젖었는지도 모른다. 결국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테니. 아이 둘을 낳고 가정주부로서 살아온 시간은, 살면서도 느꼈지만 나조차도 값을 매기기 어려운 시간이다. 양가 어른들은 물론 남편도 종종 내 일상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고 가끔 그런 시선들이 폭력적이라는 기분도 들었다.
참 우습다.
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정서적인 외도로 이혼을 생각했는데, 결국 기록되지 않은 나의 시간들로 남편의 부정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