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날이 밝아온다. 이렇게 울지 않고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다니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사실 두렵다. 이 끝이 두렵다. 그때는 두려운 지 몰랐는데 지금 내 안에 남은 감정은 남편이 극복해 버린 두려움이었다.
그날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내가 지금 무얼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아이들일까, 가정일까, 이혼일까. 그런데 참 우습게도 스스로 그렇게 반문하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사랑이라고.
남편이 아이들 맡겨두고 여행을 떠나자고 했던 그 말처럼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 상황에 사랑이라니. 사네 마네 하는 이 와중에 남편의 사랑을 원한다니. 내가 생각해도 왜 그랬을까 싶지만 그때는 정말 진심이었다. 내게서 떠나간 남편의 마음이 그리웠다.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주는 안정감이 너무 간절했다. 그래도 그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고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그저 내 마음이 다 할 때까지 같이 가겠다고. 언젠가 진짜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 할 때, 우리의 끝은 지금처럼 슬프거나 오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이게 뭘까, 너의 잘못을 용서하고 너의 최선을 인정하고 나는 조용히 다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일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을까?
이런 어처구니없는 나의 긍정을 듣고, 남편은 안도감이 들면서도 씁쓸하다고 했다. 맞다. 정말 딱 그랬다.
아주 단호하게 나와의 이혼을 준비한 남편도 김이 센 걸까,
나는 남편의 단호함에 겁이 난 걸까.
우리는 그렇게 이 이야기를 끝맺었다.
정말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