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오피스 와이프
어느 햇살 좋은 오후, 블록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잃은 건 그가 아니다. 지금 내 안에 가득한 이 공허함은 무너진 신뢰나 산산조각 난 사랑이나 위태로운 가정의 울타리가 아니다. 그를 잃어서 슬픈 게 아니다.
외로움. 삶의 허기 같은 것.
남편을 사랑하게 된 후로 단 한 번도 외롭지 않았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온기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들 속엔 외로움이 싹트지 않았다. 멀리 있어도 내겐 늘 봄처럼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람.
여전히 아이들의 아빠로, 나의 남편으로 부모님들의 아들과 사위로 변한 것 없이 살아가지만 나는 알 수 있다. 내 삶을 감싸 안았던 온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그냥 블록을 담으며 그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씁쓸하다는 말로는 부족한데, 이렇게 큰 걸 잃고 살 수는 있을까 혼잣말을 해본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후회가 되는 게 하나 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은 것. 괜찮다고 말하고 믿어버린 것. 그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헌신, 더 나아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게 후회로 남는다.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척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쏟은 뒤 다 타버린 재처럼 가라앉았던 지난날들. 왜 그랬을까. 좀 징징거릴걸.
요가원을 운영하는 2년 동안, 총 4번의 생리를 했다. 일 년에 두 번_ 여름휴가, 겨울 휴가 때 한 번씩.
겉으로는 요가하는 삶을 살 수 있어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진짜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발버둥처럼 느껴지는 건 뭘까. 이렇게 살다가 한 번 웃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던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아침, 솔이는 내 영상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웃는 게 힘들어 보여'
이 말을 듣고 코끝이 이렇게나 빨리 찡해질 수 있나 당황스럽게 눈물을 삼키고, 말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좀 어려운가 봐 실수도 하고, 그래도 이 사진엔 좀 편안해 보인다 그지?라며 얼른 삼킨 눈물을 지웠지만 솔이의 그 조심스러운 말에 목이 메온다.
행복하게 살걸, 부족해도 많이 웃고 잘 못해도 그냥 속 편히 재밌게 살걸. 아등바등 발 동동거리며 애쓰며 살아도 내게 찾아올 불행은 찾아올 텐데.
그때 좀 많이 웃어둘걸. 후회가 된다. 아이들 크는 동안 엄마로서, 나로서 자리를 지키려고 너무 조급해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후회가 된다. 늘 봄처럼 곁에 있었던 남편과 대화도 많이 나누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마음도 어루만지고 그럴걸.
연애하고 결혼생활하면서 남편은 한 번도 잔소리를 하거나 토를 달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나, 집안의 일들, 그리고 부부 관계에서도 정말 아무런 이견을 내지 않고 나를 지지해 줬다. 나는 그것이 남편의 타고난 기질이자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고마웠다. 그런데 남편의 외도를 확인하고 미친 여자처럼 나를 사랑하기는 하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던 남편은 혼잣말하듯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나를 향한 지지와 기다림, 그리고 수용이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다고.
남편의 온기와 사랑을 미화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과거의 행복이 현재의 불행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후회를 하게 된다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