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나는 실패에 매우 취약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내 삶은 대부분 실패의 연속이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만큼 실패를 많이 경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늘 혼자이다. 엄마가 되어서도 그런 걸 보면 이건 문제라기보다 타고난 기질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얻는다. 하지만 외롭다.
이것이 내가 실패라고 부르는 이유다. 나는 늘 외롭다.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나는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와 마음을 트고 가까이 지내는 것이, 어떨 때는 내키지 않고 어떨 때는 하고 싶어도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이 글은 오늘 아침 요가 학원에서 만난 동네 아는 언니와의 만남에서부터 출발한다.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을 일컫어 '금사빠"라 한다. 나는 그 금사빠를 대표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옥이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슨 연예인을 보듯 그 시원시원함과 경쾌한 분위기에 금방 빠져버렸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답지 않게 여유가 넘쳤고 나처럼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조바심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변함없다) 그렇게 몇 번 놀이터에서 마주치고 나는 용기를 내 그 언니에게 물었다. ' 어쩜 그렇게 여유가 넘치시나요?' 언니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겼지만 나는 정말이지 궁금했고 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언니랑 더욱 친해지고 싶었다. 몇 번 왕래 후에 우리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고 같이 운동을 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타지에 와서 아는 사람 없이 적적한 나를 위해 반찬도 나눠주고 말동무도 되어주고 같이 점심도 먹고 그렇게 내 삶에도 새로운 누군가가 등장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금사빠라 하지 않았던가. 금사빠들의 특징은 금방 싫증을 내거나 변심을 한다는 것. 내가 변했는지 몰라도 어느 순간 언니가 불편해졌다. 서로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뒤에는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졌는데 그것이 선입견으로 작용한 건지, 예전처럼 옥이 언니를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본모습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무의미한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끼리 성향이 안 맞아 종종 엄마들까지 마음이 상하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언니의 그 쿨한 제스처가 어찌나 나를 심술 나게 하는지, 말이 느려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옥이 언니네 딸과 말이 빠르고 조심성이 강한 솔이가 만나면 늘 솔이가 넘어지고 깨지고 울고 나서야 자리가 끝났다.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니 언니에 대한 감정이 그냥 동네 엄마라기보다는 뭐 저렇게 경우 없는 사람이 있지? 애 교육을 뭐 저따위로 시켜? 이런 식의 짜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상처를 나눈 사이가 되고 보니, 그걸 보듬어 주기보다 서로의 약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단 기분도 들었다. 참 안타깝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마음은 추운 겨울이 시작될 때 즘이었고 따뜻한 봄 오랜만에 요가 학원에서 언니를 만났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웃음을 지웠다. 속이 좁은 건지, 마음이 열리지가 않았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잘 아는 사이였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속내를 읽고 있는 듯.
'나 임신했어'
언니가 말했다. 임신 초기라고. 나는 나이도 있고 둘째를 생각하고 있었던 언니의 상황을 알기에 축하한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축하해주기도 전에 샘이 났다. 부러웠다.
사실 올해 계획하고 있는 임신 출산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나던 찰나, 여기저기서 임신 소식이 들려오는데 언니에게도 이렇게 축복할 일이 생기다니. 오만 감정이 스치는 듯했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언니는 나보다 한 수 위인 사람이다. 삶의 굴곡이 많았던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을 해서 사실 내 마음 정도야 쉽게 읽을 테지. 그런 언니를 앞에 두고서 나는 딱딱하기 그지없이 축하의 메시지를 남기고 먼저 등을 돌려 수업을 들으러 갔다. 하지만 요가하는 한 시간 동안 내내 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또 다른 완전한 실패를 의미했다.
인간관계의 실패는 너무나 불쾌하다.
이럴 때면 언제나 힘이 빠지고 초조하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세상 사람들은 어디서나 늘 행복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언제나 제일 어렵다. 실패를 수없이 하는데도 굳은살도 안 생기고 덤덤하지도 않다. 늘 불쾌하다. 내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뒤 얻은 거라곤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이럴 때 쓰러지지 않도록 그저 나는 나를 묵묵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