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어제 저녁 남편과 나눈 대화의 마지막 말이다. 남편이 씁쓸함을 체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열심히 사는데 쳇바퀴여"
나는 달력에 이 문장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생각들, 걱정들이 뒤섞여 눈이 감기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사는데 인생은 언제나 쳇바퀴다.
남편은 졸업 후 외삼촌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낙하산이 주는 이점과 오점을 동시에 컨드롤하면서 남편은 꽤나 업무적으로 성장했고 인정받았다. 비록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주체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았다. 그건 옆에 있으면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문을 닫고 한 동안 공백기를 가지면서 남편은 위태로워했다. 솔이가 태어난지 5개월도 안되어 실직을 했고 아직은 사회 초년생이니 다시 무언가를 준비하고 시작하는데 부담이 컸을 것이다.
다행히 좋은 회사로 이직하고 급여도 훨씬 많아졌다. 생애 처음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우리 딸도 커가면서 서울말을 쓰기 시작한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남편과 나처럼 세상 좁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리고 부모의 그늘에서 더 멀리 벗어난다는 건 여간 벅찬 일이 아니였다. 서른을 넘겨 이제야 독립심이 자라는 듯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남편의 업무였다. 전에 비해 역할이 너무나도 작고 수동적이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방석처럼 깔아놓은 자리이다.
남편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일도 빨리 익혀 회사에서 자리를 쉽게 잡았지만 더 이상 올라갈 곳 없는 자리에 앉아 넘쳐나는 잡무들을 보면서 많이 괴로워한다. 세상이 언제나 그렇듯 자리가 사람을 만들듯, 남편은 종종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오늘 저녁도 남편은 퇴사하는 회사 동료와 치킨 콜라를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퇴사하는 옛 동료보다 자기 자신이 더 위태롭다는 걸 다시 직시하고 돌아온 남편은 전에 본 적 없이 고뇌하고 있다.
도대체 무얼 해서 먹고 살아가나, 벌써 끝이 보이는 곳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이 될 줄이야. 남편은 말했다.
"열심히 사는데 쳇바퀴여"
남편을 세상 걱정없이 자라온 온실 속에 화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연애 적에만 해도 나는 이 사람이 그늘이 없는 사람이라 더 끌렸다. 한 없이 가라앉는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손잡아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여전한 사실이다. 남편은 건강하고 강한 부모님을 두었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외동아들이라 부족함 없이 생활했고 몸도 마음도 풍족하게 자라온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자라왔던 간에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다. 나처럼 부모님이 가정을 못 지켜 유목생활을 했던 사람도, 형제끼리 뿔뿔이 흩어져 고립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도, 아직도 토라진 아이의 마음이 가득한 사람도, 그리고 남편같이 따뜻한 사람도 우리 모두는 똑같다.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느끼고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질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다는 것.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토록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쳇바퀴라니...
남편은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전하는데 그러고 나면 어느 때보다 후련해 보인다. 지금도 금방 기분이 나아졌는지 농담도 하고 얼굴에 웃음기도 보인다. 다이어리에 내일의 계획도 적는다. 쳇바퀴 인생을 벗어나고자 하는 순수하고도 강렬한 마음을 담아.
오늘은 앞뒤 무드 없이 남편과 사랑을 하고 싶다.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여생을 살아간다는 것에 감사한다. 오늘 글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