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한 남편 되기 싫어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비 오는 날 카페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내 옆에는 한 초등학생이 학습지를 풀고 있다. 카페에서 _ 세상은 정말 재미난 곳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솔이랑 카페 데이트나 할까 생각은 했었지만 내 옆에 학습지 푸는 초등학생을 만날 줄을 몰랐다. 재미난 곳이다 세상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 남편이 부재중 일 때는 그렇게 그립고 보고 싶더니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고 다니 별 감흥이 없다. 남편의 퇴근이 반가운 건 나의 육아를 분담할 수 있고, 정성을 다해 저녁 요리를 하고 여유 있게 씻고 하루를 균형 있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솔이에게 남편의 좋은 기운을 나눠줄 수 있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그 편안하고 따듯함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솔이를 재우고 남편과의 대화시간을 따로 가지지 않으면, 평일 중 우리 부부만 함께 하는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다. 아침에는 허니도 정신없이 출근하고 나도 솔이 챙기고 정신없이 운동 나가면 각자의 위치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퇴근. 퇴근은 허니의 일이 끝났음 의미하기도 하지만 홀로 육아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솔이 양치질까지 시키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대부분 우리 부부도 같이 자리에 눕는다. 요 며칠은 그렇게 셋이서 다 같이 잠든 날이 많았다. 일찍 자서 몸이 개운하긴 한데 이렇게 매일매일이 지속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며칠 전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난다. ' 당신한테 무능력한 남편이 되기 싫어'


나는 이 말을 듣고 꽤나 많이 놀랐지만 어떠한 코멘트도 달지 않았다. 부정도 긍정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야 했기 때문에. 이미 남편은 종종 자신이 아내에게 무능력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남편은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주는 일을 굉장히 싫어한다. 불편해하고 못 견뎌한다. 하지만 매번 누군가를 만족시키고 매 순간 멋진 사람이 된다는 건 누구나 꿈꾸는 영원한 꿈같은 이야기 아닌가? 더군다나 남편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섬세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자주 잊어버리고 자주 실수하고 자주 나의 부탁이 미뤄진다. 나는 그런 남편을 알고 있다. 그런 남편을 이해한다기보다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신혼 초에는 남편도 신혼의 꿈에 부풀어 슈퍼맨 남편처럼 굴었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서로 '이건 뭐지?' 당혹스러워하며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곧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타고난 우리의 모습을.



그래서 나는 남편의 성향을 잘 헤아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리고 큰 기대 없이 남편이기 때문에 종종 어떤 집안일을 부탁했었다. 보일러가 고장 났다거나 안방 전등이 나갔다던가, 세면서 물이 잘 안 내려간다거나, 로봇청소기 서비스센터 좀 연결 해달 라거나. 적고 보니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네? 무튼 이런 일들을 그냥 지나가는 말로 부탁했었다. 남편이 나 회사일이 바빠서 그건 당신이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어도 아무런 감정 상함 없이 잘했을 텐데, 남편은 거절을 하는 것도, 거절을 당하는 것도 굉장히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나의 부탁을 다 받기만 한다. 자신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그런 말들이 몇 번 오간 지난 주말 저녁, 몇 달 전부터 고장 난 로봇청소기가 솔 이방 옷장 밑에 숨어있었다. 여름이 되니,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는데 집안에 먼지가 너무 쌓여 로봇청소기를 다시 쓰면 참 좋겠단 생각해 다시 허니한테 말했다. ' 허니 지난번에 로봇청소기 수리센터 있다고 했지? 그거 좀 해줄래?'


그랬더니 남편은 구몬 학습지를 옷장 뒤에 숨겨놓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하는 아이처럼, 숙제를 했는데 집에 놔두고 왔다고 변명하는 아이처럼 그렇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거 하려고 했다고. 그리고 보일러도, 거북이 물도 갈고, 세면대도 뚫어두고, 전등도 갈려고 했다고. 다 적어놨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 말을 한 남편도, 그 말을 들은 나도 조금은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어떠한 농담도 할 상황이 아니라 그냥 알았다고 고맙다고만 말하고 밥을 마저 먹었는데 그날 저녁 남편이 또 그 리스트들을 말하길래 길게 한 숨을 쉬고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거 허니한테 내 준 숙제 아니고 부탁이라고, 안되면 내가 할 테니 말해달라고. 나 허니한테 그렇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했더니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 당신한테 무능력한 남편이 되기 싫다고'




.......








그리고 우리는 열흘 가까이 그렇게 좋아하는 부부 수다 시간 없이 솔이 잘 때 10시쯤 다 같이 잠자리에 든다. 이 상황에 대해 한 번은 다시 생각해봐야지 했는데 이게 이 글을 쓰기까지 열흘이나 걸렸다. 남편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책임감 있는 사람인데, 이 말을 하면 믿지 않을 거 같아 남편과 대화를 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그동안 내가 자주 허니에게 실망하는 모습을 보인 건 아닌지, 그게 허니의 기세를 꺾고 초초하고 불안하게 만든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다. 물론 나도 남편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많다. 나 역시 남편에게 멋진 아내,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내 의지로 꺾일 때라던가 스스로 못난 모습을 보일 때면 부끄럽고 창피해 모른 척할 때도 많았다. 남편은 짓궂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그런 약한 부분을 절대 일부러 틀추는 일이 없는데도 나 스스로 실망스러워 남편 보기가 불편했던 적이 많다.



연애할 때는 삶의 일부분만을, 그것도 가장 아름답고 멋있고 준비된 모습만을 공유하는데 결혼을 하면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을 너무나도 가까이서 나누어야 한다. 나누고 싶지 않은 부분들까지 서로 함께하면서 그 시간들이 주는 힘으로 더 단단한 부부가 되어가는데, 사실 그 과정이 어느 정도는 불편하고 힘이 든다. 아직도 상대방을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편안하고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가정이 가정의 역할을 못하기도 한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남편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우리 부부가 함께 가는 이 길이, 순탄하지 않음에. 물론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겠지만 내가 두려웠던 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잘 헤쳐나가고 싶은데, 남편의 초초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어루만질 수 있을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나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준비를, 다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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