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장모님한테 하소연이야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남편은 솔이 재우러 들어가서 또 기절했다. 다행히 오늘은 샤워도 한 것 같고 양치도 한 듯하다. 잘 잤으면 좋겠다.



윤성이가 태어나고 솔이 방에 침대가 생긴 뒤로, 솔이는 남편이 재우고 있다. 내가 시킨 일이긴 하지만 자기 전에 책을 두세권 씩 읽어주고 꼭 안아서 토닥토닥 재워준다. 솔이는 요즘 낮잠 없이 신나게 놀기 때문에 8시만 넘으면 일단 수면 모드다. 그래서 우리 집은 9시엔 전체 소등이다. 그런데 그 소등이란 게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이지 우리 부부가 그때 잔다는 말을 아니다. 솔이와 둘째가 잠들면 나는 나와서 설거지를 하거나 방을 정리하고 남편은 빨래를 개거나 방을 닦는다. 그리고 씻고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잠이 든다.



이게 우리의 일상이었는데 요즘 들어 남편이 자꾸 솔이 재우러 들어가서는 같이 잠들어 버린다. 씻지도 않고 심지어 양치질도 안 하고 잠이 들어버린다. 다음 날 아침까지 자는 경우도 있고 새벽에 깨서 양치하고 밤을 새기도 한다. 바보같이_ 그럴 거면 그냥 씻고 아예 자러 들어가지 맨날 솔이 재우고 할 일이 많다며, 솔이 재우고 나와서 설거지할 테니 달링은 좀 쉬라며 이런 멘트들을 날리고 들어가 감감무소식이다. 심지어 내가 들어가 깨워도 잘 안 일어난다. 말 그대로 기절.



나는 그런 남편이 사랑스럽다. 말로만 슈퍼맨 인척 하는 것도 귀엽고 그 깔끔쟁이가 양치질도 안 하고 잠들어 버린 것이 뭔가 골탕을 먹인 기분이랄까? 무튼 재미있고 사랑스럽다. 남편은 나보다 두 살이 어리다.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남편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건 사랑에 빠져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남편은 좀 사랑스러운 스타일이다 ㅋㅋㅋㅋㅋ) 사랑스럽다는 말을 왜 이리 많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엄마가 빨래를 개며 물었다. ' 니 이번에 뭐 그리 많이 샀니?' 맞다. 나는 얼마 전에 과소비를 했다. 평소에는 솔이 옷, 솔이 물건, 안 써본 둘째 기저귀, 새로 나온 물티슈, 값이 싸서 쟁여놓으면 좋을 물건들을 쿠팡으로 주야장천 주문했었는데 _ 이번엔 달랐다.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신 뒤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애 둘은 도대체 어떻게 키우는 것인지, 애 둘이 동시에 울어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둘째를 샘 하는 솔이한테 뭐라고 말해줘야 하는 건지, 안 자고 보채고 토하는 둘째를 보면서 어떻게 솔이 밥을 챙겨줘야 하는 건지 뭐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좀 질렀다.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든 풀고 싶어서 (^^) 좀 질렀다. 원피스를 몇 벌 샀고, 신발을 몇 켤레 샀다. 참 스카프도 샀다.



비상금으로 몰래 사지 않고 가족카드로 시원하게 긁어버렸다. 월급날 정산을 하는데 카드 명세서에서 내가 쓴 걸 동그라미 치니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미 산 것도 성에 안 차 조금 더 지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마상에나 이 돈이면 대출이자를 몇 번이나 갚을 수 있는데......

많이 썼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썼다. 카드는 일단 돈 나가는 게 눈을 안보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계산기로 얼마나 썼나를 다 더한 다음에 남편에게 속죄하듯 고백했다.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데 이렇게 많이 쓴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다음에는 이러지 않겠다고.




남편은 자기가 뭐라고 잔소리하면 또 스트레스받아서 더 지를 걸 다 아는 사람처럼,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 돈이 다 씨발 비라고 농담도 알려줬다. 다들 스트레스받을 때 씨발 씨발 거리면서 쓰는 돈이라고,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고마웠다. 남편이 잔소리를 안 할 거란 걸 알고 있기도 했지만 이렇게 스무스하게 넘어가다니 미안함이 쏙 사라진다. 장바구니 담아 둔 샌들이랑 리넨 블라우스 하나 더 사도 되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좋은 남편이랑 살고 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말하길. 김서방이 이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 자기는 오만 거 다 사놓고 나는 다른 것도 아니고 욕실 청소 스퀴지 하나 못 사게 한다고 ' 하소연할 때가 장모님 밖에 없다고 그렇게 내 흉을 봤다고 한다. 내가 9시간 수련하러 간 일요일에. 역시 우리 엄마는 내 엄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나한테 다 말해준다. 흥.



남편은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다. 이제껏 옷 한 벌 사는 걸 본 적이 없다. 돈이라도 조금 생기면 곰팡이 제거제나, 욕실 청소 도구나, 공구세트나 뭐 그런 걸 산다. 자기 꺼도 아니고 내 꺼도 아닌 물건들. 그런 걸 사고 또 엄청 좋아한다. 평소에 집 청소도 내가 하라고 해야 하는 사람인데 청소 도구는 엄청 좋아한다. 이케아에 가서도 쓰레받기랑 빗자루를 사 오는 남자다.




얼마 전 욕실 바닥 물기를 좀 닦아달라고 했더니 스퀴지를 하나 사야 한다길래, 단칼에 안된다고 말했다. 왜 안되느냐, 그 이유도 또박또박 말해줬다. ' 일단 허니가 산 빨간 스퀴지 저기 큰 베란다에 있다.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있다. 나는 허니가 이런 걸 사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사놓고 제대로 쓰지도 않고 까먹고 또 사는 게 싫은 거다 ' 정말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이때 정말 내가 '서울 여자'처럼 보였다고 정말 싫었다고 했다. 남편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모른 채 했다. 허니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몸에 좋은 쓴 약을 준 것처럼) 훈계하고 뒤돌아섰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집 곳곳에 쌓여있는 쓸데없이 많은 물건들을 다 보여줘야지 싶은 마음이었다. 스스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_





남편이 하소연을 했단다. 지는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나는 욕실 청소 도구 하나 못 사게 한다고. 서럽다고. 하 _



그런 남편은 오늘도 솔이 재우러 들어가 기절을 했다. 덕분에 나는 조용히 혼자서 글을 적을 수 있다. 가끔 몰래 내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는 남편에게 전할 말을 남겨야겠다. 허니 미안해 ~ 사고 싶은 스퀴지 사서 욕실 청소 깨끗이 해줘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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