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늦은 밤 요가 수련을 마치고 주차하고 올라오는 길. 한 손에는 요가 가방 또 다른 한 손에는 엠씨스퀘어가 들려있다. 오늘따라 주차장에 차가 꽉 차 지하 3층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이 멀기만 하다. 저벅저벅 걸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다르구나.
남편 퇴근하면 요가 수련 가려고 기다렸다. 다행히 야근 없이 집에 왔고, 같이 저녁도 먹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분리수거하는 날이라 요가 가기 전에 남편이 후다닥 버리고 오겠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여유가 있어서 그러라고 하고 뚜뚜랑 실로폰을 치고 놀았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곧 출발해야 하는데 남편이 돌아오질 않는다. 전화기도 안 가져가서 연락도 안된다. 분리수거하러 간 사람이 왜 이렇게 안 오지? 걱정보다는 짜증이 나면서 자꾸 시계만 쳐다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웃으며 실로폰을 치고 있는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데.
한 참 뒤에 돌아온 남편의 표정이 어둡다. 뭔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거나 곤란하거나 기분이 나쁜데 그걸 참을 때, 특히 나에게 전할 메시지가 명확하고 분명한데 그 말을 아끼고 있을 때의 표정으로 들어온다. 나는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짜증 겸 마음이 급해지는데 남편은 또 다른 방패를 지니고 온 얼굴이다.
애 둘을 키우니 집에 살림살이가 늘어만 간다. 시기별로 꼭 필요한 물건들일 텐데도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일종의 강박증이겠지, 나는 여백의 미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지금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그 작은 스트레스를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푼다.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 날. 일단 버려야 하는 쓰레기, 그리고 몇 해가 지나도 꺼내지 않고 처박아 두는 물건들, 언젠가 쓰겠지 생각하며 고이고이 쌓아둔 물건들, 안 쓸걸 알면서도 뭔가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여백을 만든다. 오늘은 주방 쪽 베란다를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뚜뚜 낮잠 시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정리를 했다. 하면서도 아 이거 할 시간에 운동이나 하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생각했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 움직였다.
냉장고 옆 붙박이 장 맨 꼭대기에 엠씨스퀘어 상자를 발견했을 때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쓰레기 통에 담았다. 전에 한 번 버리려고 꺼내 놓았는데 남편이 멀쩡하다며 꺼내서 며칠을 거실에 두다가 다시 상자에 넣어 챙긴다고 챙긴 것이 냉장고 옆 붙박이장이다. 어? 또 안 쓰고 여기 있네, 그럼 버려야지 뭐 _ 생각하며 당당하게 쓰레기 통에 담았다. 요즘 누가 엠씨스퀘어 들어?
남편은 분리수거를 하러 가 이 엠씨스퀘어를 만지작거리며 한 동안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도 정작 쓰진 않지만, 전에도 그렇게 소중하게 쓰진 않았지만 분명 비싸게 주고 샀다고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그 생각으로 분리수거 장에서 상자를 열었다 닫았다를 수없이 반복하다 아내가 두 번이나 버리려고 시도한 걸 알고는 끝내 그 자리에 두고 오느라 집구석엘 안 들어온 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내 눈을 피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엠씨스퀘어가 어쩌고 저쩌고 구시렁거렸다. 아버지가 오십만 원인가 비싸게 주고 산거고 어쩌고 저쩌고 멀쩡한데 아 버릴까 말까 고민했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요가학원 늦었다. 얼른 남편에게 뚜뚜를 맡기고 요가복 입고 빠빠이.
차 타러 가는 길 그 어둠 속에서, 그 많은 쓰레기들 가운데 엠씨스퀘어 가방에 유난히 눈에 띈다. 아, 아무도 안 가져갔구나. 아직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구나. 그 길로 분리수거 장으로 가서 상자를 열었다. 다행이다. 상자를 차에 싣고 요가 수련, 그리고 열두 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한 손에는 그 상자에 들려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허니에게 소중한 걸 버리려고 해서 미안하다고, 나는 원래 뭘 버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허니 마음 상하게 하면서 까지 무언가를 버릴 이유가 없다고. 미안했다고 말하며 평소답지 않게 배시시 웃으며 상자를 건넸다. 남편은 아 이거 왜 주워왔는데 ~(부산 사나이) 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아, 우리는 정말 다르구나.
그렇게 엠씨스퀘어는 우리 집에 다시 돌아왔다. 지난번 남편이 회사에서 종이 분쇄기를 가져와 어디 처박아뒀을 때도 3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쓰지도 않길래, 자리만 차지한다 싶어 버렸는데 남편이 몰래 주워와 자기 방 책장에 숨겨둔 걸 보았다. 그 종이 분쇄기도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 숨겨진 분쇄기를 보면서 생각했었지, 허니 물건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제대로 간수도 안 할 거면서 뭐 이렇게 쓸데없는 자질 구리들을 자꾸 모아 오는지. 그런 두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남편에게 말했던 대로, 나는 내 삶을 함께 하는 남편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면서까지 여백의 미를 추구하지 않겠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어디 잘 숨겨두라고 말하겠다. 분리수거하러 가서 자꾸 멀쩡하다며 남의 물건 주어오지 말라고 말하고, 그렇지만 그러고 싶다면 가지고 와 잘 숨겨두라고 말하겠다. 영어가 안되면 시원스쿨, 시디까지 멀쩡하게 있는 책이라며 주워와 어디엔가 처박아 둔 게 생각난다. 눈에 띄기만 해 봐라.
그냥 요 며칠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만한 작은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같이 뚜뚜 빨래를 개면서도 대충대충 접길래, 갤 때라도 손으로 반듯하게 손 다림질을 하면 옷이 깨끗해진다고. 나는 그냥 알려준 건데 남편은 기분이 상했는지 삐딱선을 타길래 그 이후로 말 한마디 없이 빨래만 갰던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반항이라도 하듯 나 보란 듯이 모든 옷들을 이등병처럼 반듯하게 개어 놓았다.
그냥 우리가 이렇게 다른데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남은 우리의 여생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짜증이나 슬픔보다 기쁨과 행복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엠씨스퀘어 상자를 들고 오며 다짐했다. 아니 체념이랄까. 그래 타고나길 다르게 타고났으니 어쩌겠는가. 뭐 대단한 거라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엠씨스퀘어로 사니 마니 할 일도 아니고.
오늘도 행복을 택하소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