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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에서 책 읽기 Apr 29. 2017

시간을 달리는 소녀들

페르세폴리스 /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보건교사 안은영


길들여지지 않는 소녀, 페르세폴리스

1960년, 세련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최신 문화를 향유하며 각자의 아름다움을 빛내던 이란의 여인들. 1980년, 그녀들은 차도르에 휘감긴 검은 미라 상태로만 거리에 나설 수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극단적인 시간 속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이란의 소녀 마르얀 사트라피의 회고록이다.

사트라피의 성장사는 이란의 격동기와 궤를 함께한다.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던 샤 팔라비 시절, 진보 성향의 중산층 집안의 소녀 사트라피는 문화와 종교적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슬람 혁명과 호메이니의 공포 정치, 이라크 전쟁 이후 모든 것은 과거로 돌아간다. 새로운 세계를 엿본 후 회기 하게 된 시간은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페르세폴리스>의 배경이 암울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멀지 않은,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실화이기 때문이다. 마트로슈카를 늘어놓은 것 같은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시기를 명징하게 요약한다.

베일 쓰기를 거부한 사트라피는 가정 다음으로 보호받아야 할 학교에서 배척당한다. 모두를 황홀하게 해 주었던 문화는 오직 남성들에게만 허용된다. 물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유린당한다. 독재를 피해 지인들은 한밤중 양 떼 속에 숨어 탈출한다. 한 숙녀는 다음날 사형을 앞둔 저항군 연인을 찾아와 슬픔마저 유보한 채 감방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미혼모의 삶은 사회적 자살과 다름없지만 그가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기려 한다. 사트라피에게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를 들려주던 삼촌은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다. 무작위로 체포된 어느 어린 소녀는 초라한 지참금*으로 돌아온다. (*이란에서는 신부 집안에 지참금을 준다. 죽이기 전 결혼의 형식을 한 강간 후 소녀를 총살한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서구의 신자유주의라는 극단 사이에서 이념, 성별을 넘어선 정체성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트라피는 냉소만 던지지 않는다. 그녀가 그려내는 이슬람 격동기에는 유쾌한 낙관을 품은 진짜 사람들이 가득하다. 자조라 할지라도 이 유머 감각과 꼿꼿한 자존감은 절망의 시대 속에서 유일하게, 그러나 형형하게 살아 남아 그녀를 위로한다.




테헤란 북 클럽,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언젠가 여행지의 부띠끄에서 이슬람 여인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적 있다. 아마도 상류층 귀부인들이었는지 VIP 부스에서 유럽인 크루들의 시중 같은 안내를 받고 있었다. 이국적이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전통 의상, 찰그랑 찰그랑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보석들, 이 모든 코스튬이 압도적으로 어울리는 나른한 분위기의 갈색 피부 미녀들. 마치 영화 세트장 속을 지나치듯 아름다우면서도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아자르 나피시는 이런 이미지가 공허하게 조작된 판타지라고 규정한다.


나피시의 회고록은 두 장의 사진으로 시작된다. 검은 차도르로 온몸을 감싼 채 똑같이 경직된 표정의 소녀들과 차도르를 벗고 각자의 옷과 표정을 드러낸 소녀들은 동일한 그룹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에도 ‘고독한 삶이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제자들과 나피시는 금서 토론 북 클럽을 만든다. (한숲 P.30)

독재자답게 호메이니는 이슬람식 분서갱유를 실행한다. 감정을 자극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금하고 종교서 외엔 책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미혼 남녀가 함께 있기 위해서는 정부 발행 증명서가 필요하다. 보호의 명목으로 여성들은 억압의 베일을 써야 한다.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격하되는 동안 남성들은 아내가 죽으면 삼 개월 만에 처제와도 결혼할 수 있다. ‘남자들에게는 특별한 생리적 요구’가 인정되기 때문이다. (한숲 P.66) 

“재산 유무에 관계없이 이슬람교를 믿는 남자가 아홉 살짜리 처녀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한술 P.493) 제인 오스틴의 명문장을 딴 야씨의 자조처럼 신부로 용인되는 나이는 점점 내려가다 급기야 아홉 살 소녀도 신부로 데려올 수 있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금서 토론은 정치 시위나 다름없다. 이들의 인권이 더 나빠질 것이 있느냐고? 바닥 밑에 심연이 있는 법이다.


나피시와 소녀들은 왜 위험까지 불사하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헨리 제임스, 제인 오스틴을 읽어나갔을까?

나피시는 <롤리타 Lolita, Vladimir Nabokov, 1955>를 ‘한 개인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몰수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로 보았다. (한숲 P.71) 그녀들의 인생이 이념이 조작해 놓은 현실에 몰수당한 것처럼 말이다.

타자에게 비치는 이슬람 여인들의 모습은 허구의 피조물이다. 앞서 말한 여행지에서 내가 던진 시선은 악의가 없었다 해도 이슬람 남자들의 대상화된 판타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제인 오스틴 북클럽 The Jane Austen Book Club, Karen Joy Fowler, 2004>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좀 더 진지한 문학적 사유가 전개된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회고록 속 케이스들이 너무도 한국 남성들과 유사해 익숙해 고통스러울 수 있다. 나피시의 소녀들은 헐리웃식 화해도 신데렐라식 전환점도 획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들의 에필로그는 퍽 울림 있다.

만나는 이슬람 공화국이 자신의 색감을 무디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무채색 현실에서 그녀는 강렬한 분홍색과 토마토 같은 빨간색을 꿈꾼다. (한숲 P.34) 금서 토론을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발걸음을 옮길 때, 한 겹 한 겹 차도르를 풀어낼 때 소녀들은 다른 세계로 스며든다. 문학이 선사한 허구의 세계 속 자아야말로 그녀들의 진짜 모습이다. 그러나 이 자각을 온전한 자신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베일 밑의 자아는 진짜임에도 그녀들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부정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소녀들은 자신들의 미세한 변화를 또렷이 자각하고 있다. 아직은 베일로 덮어두어야 하지만 그 자아들은 굳건한 세계로 실재한다.




처음 만나는 평화, 보건교사 안은영

에피소드마다 사랑스러운 <보건교사 안은영> 중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무래도 ‘온건교사 박대흠’ 일 것이다. 그러나 고민 없이 단박에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전학생 옴’이다.

M고등학교 보건교사 안은영은 사실 ‘퇴마사’이다. 해리 포터처럼 선대의 초월적 힘으로 보호받고 있는 한문 선생 홍인표의 에너지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심연에 대한 주시가 이 학교를 선택하게 했다. 무뚝뚝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전투를 받아들이면서도 (인표가 질색팔색 하는) 꽃무늬의 묘미를 아는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다.


어느 날 전학 온 여학생 백혜민이 고민을 토로한다. 백혜민은 ‘옴잡이’이다. ‘재수 옴 붙었다’라고 할 때 그 옴을 처리하는 게 옴잡이의 임무다. 옴잡이는 세계라는 시스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생하며 정화작업을 해왔다. 스스로를 부속으로 자각하기에 보상을 바라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성별이 없는 옴잡이들은 상황에 맞춰 적절한 설정으로 쓸 인물을 고를 뿐이다. 최전선에서 소비되기에 옴잡이들은 전투에 유리하도록 늘 남성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시스템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번에는 여고생이 된 것이다.

처음으로 여성이 된 이 옴잡이는 남성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운 정서에 취한다. 친구라 부르는 소녀들이 보내는 연대에 애착하게 된다. 이 삶을 이어가고 싶다.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끔찍한 생리통마저 수용할 만큼.

옴잡이 백혜민의 소망은 이루어질까? 후일담까지 적절해 떠올릴 때마다 즐거운 에피소드이다.




이 세 권의 책들은 정말 재미있다! 무심코 펼쳐 들었어도 매번 완독하게 된다.

나피시의 소녀들과 사트라피는 이념의 타임머신에 강제로 태워져 절망적인 시간대로 떨궈졌다. 험프티 험프티에게 이름과 인생을 빼앗긴 돌로레스처럼 그녀들은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

은영은 음침하고 집요한 폭력들을 상대로 보상도 안식도 없을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간다. 타협을 외면한 은영은 종종 자신에게 준비된 미래는 비극적 말로가 아닐까 씁쓸해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묵묵히 달려낸다. 외견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은밀하고 미세한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 실패가 예견된다 해서 타협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 어느 부분도 분명 그녀들의 릴레이에 빚졌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들이 시간 속에 낙오되지 않길 바라게 된다. 그녀들과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시간이 후진이 아닌 조용한 전진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출처/

페르세폴리스, 마르얀 사트라피 (Persepolis, Marjane Satrapi, 2000)

페르세폴리스 1, 2 (새만화책, 2005, 번역 김대중)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아자르 나피시 (Reading Lolita in Tehran, Azar Nafisi, 2003)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한숲출판사, 2003, 번역 정정호, 이소영)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민음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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