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해요
매일 아침 회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네고 휘파람을 즐겨 부는 사람이, 어느 날 웃음이 사라지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굴고 화를 낸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고 싶다.
몇 달 전, 갑자기 변한 그를 보며 오늘 저 사람이 예민하구나 했다. 그 사람의 감정이 나의 문제, 책임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그 사람의 문제라 생각하고 외면해버렸다. 그는 짜증을 표출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점점 더 부정적으로 변해갔다. 업무적으로 마주쳐야 할 때도 핑계를 대며 그와 마주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애써 아침 명상을 하고 기분 좋게 출근해서 그의 감정 때문에 나까지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심하게 짜증을 내는 날은 속으로 '왜 나한테 짜증이야?' 이런 생각을 하며 나 역시 퉁명스럽게 그를 대했다. 그가 왜 짜증을 내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회사에서 가장 잘 따르고 좋아하는 선배다. 그 선배를 좋아하는 이유는 늘 긍정적이고, 작은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나와 다르게 짜증이 없는 모습에 좋아하게 됐다. 그렇게 몇 년을 잘 지내오다 최근 우리 사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배를 피해 다니던 어느 날 늦은 저녁,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을까 잠시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받았다. 선배는 술에 취해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그 무게에 곧 짓눌려 사라져 버릴 듯한 목소리로 "뭐 해?"라고 물었다. 그 전화를 받고서야 내가 간과하던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선배가 없던 짜증과 화를 내는 이유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그 "뭐 해?"라는 말이 “나 너무 힘들어, 나 좀 봐줘, 나 좀 살려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선배는 쉬고 있다는 나의 대답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이 없었다. 그 한숨이 내 가슴을 뚫고 들어와 내 마음에 자리를 잡은 듯했다.
"선배, 힘들어요?"
"죽을 것 같아..."
그 이후로 우리가 나눈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긴 통화는 아니었지만 전화로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는 마땅히 없었다. 그저 조심히 들어가서 잘 자라는 말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라는 뻔한 말 정도였다. 만약, 같이 술을 한잔하고 선배의 힘듦을 나눌 수 있었다면 선배의 손을 꼭 잡아주거나 따뜻한 포옹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날 그 전화를 받고 그동안 선배를 피해 다닌 나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더 빨리 선배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듣지 못했던 걸까. 그 누구보다 선배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나였는데…, 선배의 한숨이 내 가슴 안에 깊게 파고들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몇해 전 선배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직장상사는 날 공개적으로 괴롭혔다. 남성이 주류인 조직에서 할 말 하는 여직원이 그들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다. 그런 나를 선배는 스스럼없이 감싸주고, 업무적으로 상사와 대면하는 일이 없도록 많이 배려해 주었다. 중간에서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면서 매일 나의 감정까지 살펴주었다. 그때 여러 일이 겹치면서 감정적으로 무너진 나는 선배의 배려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가능한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1년쯤 지났을 때, 날 괴롭혔던 직장상사는 다른 여직원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같은 상황에서 그 여직원에게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감싸주는 선배 같은 존재는 없었다. 그때서야 선배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선배가 힘들어지니 그를 외면하고 피하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다. 오직 선배만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그가 변한 건 나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나의 문제를 본인의 문제라 여기고 내 곁에 있어준 선배에게 내가 돌려준 것은 아리고 서늘한 무관심 아니었을까.
다음 날부터 선배에게 더욱 다가갔고, 한번 더 웃어주려 노력했다. 내가 힘들었을 때 내가 받았던 사랑과 애정을 선배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공개적으로 선배를 칭찬하고, 선배의 일상에 열심히 기웃거리며 먼저 챙겨주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선배는 다행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직 온전히 돌아온 것 같진 않다. 또, 나의 관심만으로 선배가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아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배를 사랑하는 일뿐이다. 그 일을 할 뿐이다.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이상한 행동과 말을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일과 책임이라 여기며, 그저 관심을 주고, 그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여전히 너는 안전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해줄 뿐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사랑을 주고, 사랑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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