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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Jun 06. 2024

집착과 소유욕

초등학교 6학년 때일까? 정확히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까지 애착이불이 있었다.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는 나는 늘 그 이불이 있어야 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다 해진 분홍빛 이불을 버렸다.


최근까지 물건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자각한 적은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신중히 구매해서 오래 사용하는 편이긴 하다. 고등학생 때 샀던 스웨터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입고, 대학생 때 쓰던 필통을 지금도 쓰고 있다. 오랫동안 같은 물건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물건에 대한 실증이 없으니 불필요한 소비도 일어나지 않고, 다른 물건을 찾기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구스다운 패딩의 세탁이 잘못되면서 내 안에 잠재된 집착과 소유욕을 발견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분리시켜 놓았던 겨울, 유독 추웠던 겨울로 기억한다. 그때는 롱패딩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롱패딩이 갖고 싶었던 나는 신중히 고르고 골라 큰맘 먹고 구스다운 패딩을 샀다. 빵빵한 볼륨과 모자에 풍성한 털 장식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로 3년 동안 겨울에는 주구장창 그 패딩만 입고 다녔다. 평소 옷과 신발을 좋아하다 보니 주변에서 옷 잘 입는다, 옷 잘 샀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기분이 더욱 좋았다.


이런 생활 습관 덕분에 옷방의 옷은 늘 넘쳐나고, 옷장에 걸린 옷들도 좁다고 비명을 지른다. 한동안 입지 않은 옷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할 겸, 옷정리를 하다가 겨울에 입던 옷을 세탁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겨울 외투와 스웨터를 몇 개 챙겨 세탁서비스를 신청했다. 새벽에 집 앞 문고리에 걸어두면 가져다 세탁 후에 다시 집 앞 문고리에 걸어주는 서비스다. 가끔 세탁 맡길 옷이 많으면 이용했고, 서비스 만족도도 나쁘지 않았다. 옷 방을 깨끗이 정리할 생각에 상쾌한 기분으로 세탁을 신청했는데,,, 돌아온 구스는 코트보다 얇은 옷이 되어 돌아왔다.


기계세탁을 하는 세탁소에서 프레스로 구스다운을 누른 듯했다. 아침 6시에 배달된 옷을 보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빵빵하던 볼륨은 온 데 간데없고, 볼품 없어진 옷을 보니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혹시 옷걸이로 쳐주면 볼륨이 살아날까 싶어 20분 동안 열심히 쳐 줬지만, 빈대떡이 공갈빵이 되긴 어려웠다. 이 옷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고객센터에 AS 접수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세탁을 잘못해서 옷이 상한 게 대수인가 싶었다. 별일이 아닌데 스스로 별일로 만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언젠간 해지고 형태도 변한다. 그리고 그 옷이 없다고 해도 당장 인생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 큰 변수도 아니었다. 그저 옷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 때문에 화가 났다는 생각이 드니, 옷에 집착한 스스로가 너무 초라했다. 초라한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이 일을 되짚어 보면서, 집착과 소유욕을 갖는 것이 이 옷뿐일까, 사람과 돈에 대해서는 더 큰 집착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감정적으로 예민하게 구는 모습을 떠올리며, 인정해줘야 할 나의 약한 부분이 하나 더 추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과 친해지는 길을 짧지 않고 쉽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사랑으로 감싸주기 위해 오늘도 노력해 본다.


*바짝 눌린 옷은 세탁소에서 복원작업을 거쳐 돌아왔다. 이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집착을 놓아주기로 결심하니 옷에 대한 애착도 이전보다 덜하다.




#마음 #자아 #집착 #소유욕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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