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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Aug 28. 2022

내가 있어야

2주 전 밤, 나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제주도로 휴가를 다녀온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코로나 확진을 의심했다. 다음 날 아침 병원을 찾았지만 코로나는 음성이었고,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선 호르몬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내심 코로나이길 바랐다. 조용히 일주일간 집에서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갑상선 호르몬 이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는 약하게 잡고 있던 멘탈을 놓아버렸다.


사실 지난 한 달 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만성피로, 식욕부진, 특히 무기력감이 제일 컸다. 다들 여름이라서 그런 거라고, 마음과 의지의 문제라고 했지만 갑상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생긴 증상들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검사를 받아보라고 줄기차게 얘기했지만, 왜 인지 검사를 계속 미루기만 했다. 미련했다 정말. 우리 집은 어른들이 모두 각종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여러 가지 암 가족력을 지니고 있고, 그중에 갑상선 암도 있다. 가족력이 있으니 당연히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었지만, 적잖이 놀라긴 했다.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고, 나름 스트레스 관리도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갑상선 이상은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라고 했다. 지금은 정밀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갑상선이 아프고 가장 괴로운  무기력감이다. 무기력감이 크게 느껴질 때는 밥을 먹는 것도 귀찮아진다. 배는 고프지만 고픈 대로 내버려 둔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10시간 이상을 흘려보내는 날도 있다. 먹는 것도 귀찮으니 침대에 누워만 있는다. 자연스럽게 집은 엉망이 된다. 그래도 내버려 둔다. 빨래통에 빨래가 한가득이지만 그래도 내버려 둔다. 그나마 진단을 받고 나서야 내가 환자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자각이 생겼고,  자각을 기운 삼아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려고 한다.


논문 작업을 가열차게 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 무기력증이라니, 졸업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서 건설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이런 분위기와 상황을 이겨보려고 명상으로 애써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넣으려고 시도하지만, 곧 다시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지나간 일들을 끌어오고, 화났던 감정을 계속 곱씹어댄다. 정말 한 달간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침대에 누워 생각을 하다 잠이 들고, 잠에서 깨면 유튜브를 넋 놓고 바라본다. 반복이다.


5년 전에 김창옥 대표의 강의를 듣고 재미를 느껴 찾아서 보곤 했는데, 유튜브가 몸이 아픈 걸 아는지 김창옥 대표의 강의를 알고리즘으로 띄워줬다. 어느 편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권태감을 느끼는 날들이 오고, 또다시 에너지가 차올라 다시 달리는 시기가 온다고 했다. 김창옥 대표는 권태감을 이기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저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의 지금 사이클은 권태감을 느끼는 시기인 것 같다. 무기력감을 이기려고 명상을 하고, 애써 긍정적인 분위기를 넣으려 긍정적인 상상을 하곤 한다. 분명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몸이 나아지고 기운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침대에만 누워서 흘려보내는 일상을 아까워하지 말고, 나를 충전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타인에겐 줄기차게 건강이 최고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나의 몸은 돌보지 못했다.


늘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내가 있어야 나의 가족도, 사랑하는 연인도 있을 수 있다.





#30대 #일상 #마음일기 #건강 #갑상선 #김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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