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통의 이유가 내가 아니길

토마토의 계절은 여름

by 연근


어릴적 할머니와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먹었던 텃밭의 토마토를 기억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울그락 불그락 화가 잔뜩 난 듯 자유분방하게 생긴 토마토. 껍질은 질기지지만 탱글탱글하고 시큼한 맛 뒤에 숨어있던 단맛. 미지근해서 더 목이 마르게 했던 토마토를요.



성인이 되어 마트에 가보니 복사하기 붙여넣기라도 한 듯 일정한 크기와 색깔의 토마토가 투명한 용기에 포장되어 다소곳이 누워 있었습니다. ‘한 겨울에도 토마토가 있네’ 신기한 마음에 구입한 토마토는 껍질이 부드럽고 진한 단맛이 났습니다. ‘토마토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최근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바이러스는 지구인들의 모임과 여행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단조로워진 일상을 바꿔보려는 노력으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텃밭을 빌렸습니다. 3월에는 땅을 만들고 4월에는 씨를 뿌리고 5월에는 모종을 심었습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며 그들이 잘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토마토도 심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른 토마토는 제법 통통하고 탐스러웠습니다. 어릴적 할머니와 함께 먹던 맛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직접 땀을 흘려 키운 토마토는 참 인상적 이었습니다.



그때 하나의 물음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럼 그동안 보았던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키운거겠지?’ 인터넷 창에 토마토를 검색해 찾아보았습니다. 파종은 4~5월, 수확은 6~8월. 분명 여름에 수확하는 토마토를 그동안 사계절 모두 맛 보았던 것입니다.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온갖 서적과 다큐멘터리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철이 아닌 채소를 키우기 위해 온실에서 많은 양의 비료와 탄소를 소비한다는 사실을요. 식물이 자라면서 광합성과 호흡을 하며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온실속의 식물들은 그마저도 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마트에서 사 먹던 채소가 나도 몰래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어 왔다는 것을요.



죄책감의 망치로 후드려 맞은 후유증은 꽤 컸습니다. ‘모르는 것은 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망대해의 인터넷속을 떠다니며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철음식 위주의 식생활. 직접 채소를 키워 먹거나 직접 장보기. (물류가 이동하는 것도 탄소가 소비되니까요.) 육류보다는 채소 섭취량 늘리기. 그 밖에도 지구에게 무해한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주의 먼지만큼이나 작겠지만 일단 해 보려 합니다. 티끌도 모이면 태산이 된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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