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유기화합물(organic compounds). 홑원소물질인 탄소, 산화탄소, 금속의 탄삼염, 시안화물, 탄화물 등을 제외한 탄소화합물의 총칭. 생명현상에 관련되어 만들어지는 화합물은 모두 탄소화합물이므로 무기물로부터는 만들 수 없어서 유기화합물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무기물로도 일부 유기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공상세계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에서 어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분자화되어 모래의 형상을 한 괴물로 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텃밭을 가꾸며 식물과 자연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괴물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자연이 괴물 같다는 것은 아니고 악당이 분자화를 통해 – 쉽게 설명하면 가루가 되어 - 새로운 형태가 되는 것이 자연과 참 닮았다. 자연의 순환계 체계를 이해하며 원소기호와 분자가 떠오르다니. 너무 이과 출신 다운 감상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약간의 공황장애 같은 것을 앓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하다가 머리로 가는 혈관이 좁아지는 느낌이 든다. 결국엔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되고 가끔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사는 이러한 증세를 ‘죽음공포증’이라 했다. 한참 증상이 심할 때는 죽음과 관련된 뉴스만 봐도 두 팔에 털이 서고, ‘죽을래’와 같은 가벼운 농담에도 간담이 서늘했다. 그래서 최대한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생각의 흐름을 차단해왔다.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죽는 게 무섭지 않나요?” 구순이 넘은 우리 할아버지는 죽는 것은 두렵지만 그 또한 자연의 이치라고 하셨다. 흙에서 온 인간이 흙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두려운 마음은 인간의 생각일 뿐 그조차 죽으면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고. 나는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심장이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 것 같은데, 할아버지는 어쩜 그렇게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것일까? 일평생을 농부로 살면서 자연으로부터 답을 얻은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자연에 나를 대입 해 보면 죽음을 1% 정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내가 죽고 시간이 지나 썩고 또 가루가 되면 흙이 될 것이다. 그리고 흙이 된 나는 한 그루의 방울토마토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원소들이 될 거다. 나는 곧 방울토마토의 새싹이 되고 줄기가 되고 꽃이 되어 언젠가 방울토마토 열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혀 끝에 진한 풍미를 남기고 또 그 사람의 일부분이 되겠지. 그 다음의 나는 방울토마토를 먹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눈동자가 될 수도 있고, 속이 꽉찬 옥수수를 손질하는 두 손이 될 수도 있다. 뭐 물론 똥이 될 수도 있다.
자연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답을 알려준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질문에는 어떤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거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겠다는 쾌락주의나 대충 아무렇게나 살자는 허무주의에 빠져선 안 될 것이다. 자연이 그래온 것처럼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진 뭐든 최선을 다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나눠주고 싶다. 씨앗이 자라며 푸른 잎사귀로 성장하며 광합성을 통해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줄기가 시들어가면서도 열매를 키우는 방울토마토처럼. 인간에겐 쓸모가 없어 보이는 배설물도 땅에겐 귀한 거름이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