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자스프를 좋아한다. 감자의 포근한 향도 좋지만 감자스프의 입자들이 입술에서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질감이 특히 좋다. 아주 고운 백사장의 모래가 파도의 거품을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화창한 날 기분이 좋은 바리스타가 정성껏 만든 벨벳 밀크 같기도 하다.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으니 직접 키운 감자로 스프를 끓여보리라.
감자는 텃밭에 가장 먼저 심었고 또 가장 많이 심은 작물이라 특별히 애정이 많이 간다. 종묘상에서 사 온 스무 개의 씨감자들은 작은 소쿠리 안에서 목욕탕에서 한참을 불린 발가락처럼 쪼글쪼글한 모양을 하고 푸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묘상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씨감자를 조각내고 땅을 판 뒤 싹이 하늘을 향하도록 심었다. ‘잘 자라야 해’라는 인사와 함께 봄날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두꺼운 흙으로 덮어 주면 감자의 파종은 끝난다.
텃밭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교과서라고 알려진 책을 구입해 열심히 읽고는 책에서 배운 대로 감자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주말이고 평일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때마다 감자(정확히는 감자의 줄기)는 오랜만에 보는 남의 집 아이들처럼 무럭무럭 자라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조금 더 지났을까. 감자의 줄기가 시들고 힘을 잃어 옆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감자를 수확할 때가 온 것이다. (사실 몇 주 전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몇 줄기를 캐 보았는데 아직 영글지 않은 감자를 보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감자는 ‘10배 수확의 법칙’이 적용되는 작물이다. 스무 개를 심었으니 200개는 충분히 수확하겠지. 벌써 감자 부자가 된 것 같았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감자는 마트에서 파는 것처럼 크지는 않지만 양은 꽤 많았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감자스프도 끓이고 감자조림, 감자채 볶음도 해 먹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귀찮을 때에는 감자를 껍질째 쪄서 먹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과도 함께 나눠 먹었다. 택배를 보내기도 하고 직접 배달을 하기도 하며 여름날 산타가 된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사실 나는 초보 농사꾼의 밭에서도 잘 자라준 감자에게 고마운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감자야, 감자합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