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맥시멀리스트의 넉넉한 인심

고수는 사랑을 싣고

by 연근

봄바람이 유난히 따뜻하던 날, 좋아하는 카페에서 크로플을 곁들인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텃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발목까지 오던 고수가 불과 일주일 만에 무릎까지 자랐기 때문이다. 더 이상 두면 나무가 되고 말 것이다. 퇴근 후 밭으로 걸어가는 길, 어딘가 비릿하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고수의 향기가 은은하게 공기를 타고 콧잔등을 스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어후…. 정신이 확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다.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향의 깊이가 다르다. 마트에선 100g도 안 되는 것이 2,000원씩이나 하는 비싼 고수. 이렇게나 잘 자라는데 이제껏 이걸 비싼 돈 주고 사 먹었다고? 텃밭을 가꾸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밭에 심은 300알의 고수는 우리 부부의 일용할 양식이 되기엔 너무나도 많은 양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 집 마당에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들께서 농작물을 하나씩 툭툭 던져주고 가시곤 했는데 아! 그래서였구나. 그동안 기른 채소들을 도저히 먹어내기 힘들 것 같은 거친 생각과 불안함. 그건 아마도 동네 할머니들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도 인심을 부려보라는 사인이겠지. 평소보다 신경을 써서 멋들어지게 찍은 고수 밭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고수가 필요한 사람을 찾았다. 직장 동료들에게도 물어봤다.



“혹시 고수 좋아하세요? 나눠 먹으려고요.”



주변에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두 명이나 고수를 먹겠다고 해서 본격 수확에 나섰다.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뿌리째 뽑아 신문지에 돌돌 말았다.



고수로 페스토도 만들었다. 흐르는 물에 고수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 부드러운 잎을 땄다. 잣과 캐슈넛을 돌절구에 입자가 고와질 때까지 빻았다. 고수잎도 빻아 섞고, 향이 좋은 올리브유와 약간의 마늘, 파마산 치즈도 더했다. 깨끗하게 소독한 용기에 페스토를 담고 올리브유를 뿌려 싱그러운 향이 오래가길 주문을 외웠다.



고수가 금방 시들어 버리면 어쩌지….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친하게 지내는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배달을 가도 되냐고 물었다. 고맙게도 대답은 YES! 부부는 고수는 싱싱할 때 먹어야 한다며 쌀국수 배달을 시켰다. (역시 배운 사람) 나눔을 하러 간 건데 오히려 나눔을 받다니. 고맙다는 말 대신 다음에 다른 수확이 생기면 또 나누겠다는 말을 건넸다. 할머니들이 먹을 것을 나누고 또 나누시던 것처럼.



시골 인심이 넉넉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