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으로 워킹홀리데이 왔다가 정착한 지 5년째, '소작농'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 통영으로 워킹홀리데이(회사의 발령으로 팔자에 없던 통영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주말마다 아름다운 통영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게 좋아 어느새 워킹홀리데이라고 칭하게 되었다.)를 왔다가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통영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아스팔트에 던져진 씨앗처럼 나는 통영에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도록 다른 이주민(?)들은 통영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감염병이 유행하고 타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조차 꺼려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뭐라도 할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인터넷 지역 카페를 통해 집에서 2km 남짓 떨어져 있는 다섯 평의 밭을 빌리기로 했다.
그래, 이제 주말마다 소작농(小作農, 토지를 지주로부터 빌려서 경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땀을 흘리며 신선한 채소를 직접 길러 먹으면 건강에도 좋겠지. 요즘 ‘본캐’와 다른 ‘부캐’를 가지는 것이 유행이라던데. 새로운 ‘부캐’가 제법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마음이 들떴다.
처음에는 당장 심을 수 있는 감자와 사 먹기엔 값비싼 향신료 정도만 키워보려고 했다. 하지만 종묘상에 다녀와 정신을 차려보니 양손에 씨앗과 모종들이 한가득 들려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텃밭에 들인 작물들은 감자, 상추, 방아, 들깻잎, 땅콩, 고수, 루꼴라, 바질, 가지, 오이, 애호박, 고추,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참외, 수박, 옥수수, 부추, 대파. (정확히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3m쯤 되는 이랑이 여섯 개밖에 안 되는 데 열여덟 가지나 심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외할머니댁에 가서 토종 들깨와 배추 씨앗도 가져왔는데 심을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떡하지. 나도 모르겠다.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는 스페인어)! 어떻게든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