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쑥버무리

by 연근

올해 초 삼월이었던가. 같이 일하는 여사님께서 일터에 쑥버무리를 가져 오셨다. 비닐봉지에 차갑게 식은 쑥버무리를 예의상 한 입 먹었다. 갑자기 코끝이 시큰했다. 왜였을까. 나는 그 이유를 한참이 지나 알았다.



춥다고 지글지글한 구들장에 누워 등가죽이 노릇노릇 구워지고 있는데 찬바람을 가득 싣고 방문을 희뜩 열던 할머니. 미소를 한 껏 머금고 서 있는 할머니의 두 손에는 작은 접시가 담긴 쟁반이 들려있었다.


<아! 할머니 춥다!>

<영아. 쑥버무리 무라.>

<그기 믄데. 쑥떡이가?>

<떡이랑 매 한 가지다. 이맘때 되믄 쑥을 먹어 주야 손도 발도 따시진다. 새쑥이라 참 보들보들하다.>

<아내! 이기 무슨 떡이고! 안 무끼다!>

<개미가 있다 캐도. 참 내. 입에 한 개 여바라.>

<그럼 진짜 쪼금만 도.>

<아 진짜! 믄데! 맛있는 거 해준다매! 이게 맛있는 거가!>


할머니와 함께 살던 우리 마을은 40가구 남짓의 작은 부락이었다. 가장 가까운 슈퍼가 4km나 더 가야 있었으니 나의 유년기는 항상 간식이 고팠다. 달콤하고 보드라운 빵도 아니고 쫄깃한 식감의 떡도 아닌 정체불명의 음식. 게다가 풀 맛의 희망 고문이라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어쩐지 날도 추운데 아침 댓바람부터 쑥인가 뭣인가 하는 풀때기를 한 소쿠리 캐올 때 부터 알아봤다. 장에 간 줄 알았더니 할머니는 또 어디를 그렇게 다녀온 건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할머니는 왜 맛 없는 거 해주면서 자꾸 맛있다고 하냐고. 엄마는 왜 나를 할머니 집에 데려다 놓아 이렇게 나를 서럽게 하냐고. 와르르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저 엉엉 소리만 내며 울었다.


<야가 참. 와 우노.>


할머니는 영문도 모르는 표정을 한 채 차가운 손으로 내 볼을 쓰다 듬었다.


<하지 마라! 찹다!>


차가운 할머니의 손을 밀어 내면 왜 그러냐고 한 번 더 물어 보고 울지 말라고 달래줄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또 어디로 가버린건지 없었다. 그날 저녁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쑥버무리에 대한 시위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을 거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할머니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하나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작게 하나씩 포장된 빵이 여럿 들어있는 네모난 상자가 있었다.



그날 이후 쑥버무리를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성인이 되어 언젠가 마트에서 쑥을 산 적이 있다. 옛날에 할머니가 이렇게 했던거 같은데. 기억을 떠올려 쑥을 깨끗하게 다듬고, 씻고, 찹쌀가루와 설탕을 포슬포슬 섞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그럼 그렇지.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맛이 없었다. 그런데 왜 그때 그 맛이 안 나지? 이거보다는 더 맛있었던 것 같은데. 어릴 때 먹어봐서 실제보다 더 맛있었다고 느끼는 건가? 추억은 미화되는 건가. 결국 내가 만든 쑥버무리는 다 먹지도 못하고 주방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서 운명을 다했다.




나의 유년기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팔할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갈 때 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으니까. 할머니가 생각나는 날이면 전화 한 통 없이 불쑥 찾아가곤 한다. '이번 주말에 갈 게'와 같은 전화를 미리 하면 내가 올 며칠 전 부터 먹을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의 모습이 싫어서다. 하지만 꼬부랑 할머니가 된 나의 그녀는 또 어디서 가져왔는지 먹을 것을 챙겨와 나의 입 앞에 가져다 댄다.


<영아 이기 믄지 아나?>

<또 멀 가꼬 오노. 할머이나 마이 무라 쫌! 살이 쪼골- 쪼골 다 빠져가 이기 머꼬.>

<할머이는 팽소에 맨날 묵는다. 입에 함 여봐라. 참 맛이 있드라. 요 뱃가죽이 올라 붙어가 애가 터진다.>

<아이고.. 참내.. 알았다. 내 할머니가 주는 거니까 한 개만 무 볼게.>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불철주야로 사육되는 것은 오래된 루틴이다. 엄마는 내가 잘 때 제일 예쁘다고 했는데, 할머니 눈에는 내가 먹을 때 제일 예쁜가보다. 그게 아니면 내 입에 뭐라도 들어 있지 않으면 엄청난 심리적 불안감이 생기는 호르몬이 뿜뿜 나오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할머니가 어릴 적 못 먹고 자란 한풀이를 나에게 하는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를 위해 뭐라도 먹어 보려고 노력한다. 언제나처럼 할머니와 오순도순 주전부리를 씹으며 놀고 있는데, 한 번은 할아버지가 저 쪽 방에서 뭐라고 뭐라고 언성을 높였다.


<여 노애자아앙 은ㄴㄴㄴ다!>

<머라카노? 할머니 들리나?>

<몰-라!>

<할아버지 안 들린다! 뭐라고?>

<여 노래자랑 한다고!!!>

<내는 우리 영이랑 노는 게 더 재밌는데>

<아주 재미가 있는데. 언넝 안 오고 뭐하노.>

<할머니. 전국 노래자랑은 지금 아니면 지나가버리는데 내는 계속 있을 거다이가. 얼릉 보고 온나.>

<몰-라! 내는 암 시라토 안따. 여서 울 영이 얼굴이나 보고 놀기다.>


할머니가 따뜻한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다. 나는 씩 웃는다.


<그래! 할머니 그럼 내가 노래자랑보다 더 재밌게 해주께. 뭐하고 놀까?>

<뭘 하기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재밌는데.>





나는 이제 안다. 쑥버무리를 보고 왜 코끝이 시큰해졌었는지.


생각난 김에 할머니에게 전화나 한 통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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