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고 많은 이야기 중에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쓰는 이유

by 연근

먹이는 일을 하고, 먹는 일에 관심이 많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시간 덕분에 식재료와 음식을 보는 눈이 저절로 길러진 것 같다. 대형마트 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토마토를 보며 '지금은 토마토 제철이 아닌데?' 구분하는 일이 내겐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와 밭에서 보낸 기억들 때문일 거다.


이글이글 태양 아래 매운 냄새 때문인지 주변 공기를 더욱 후덥지근하게 만들던 고추 따기.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집에 가자고 몸을 비틀었다. 할머니는 나를 토마토 줄기 앞으로 불렀다.


"영아 이게 뭔지 아나?"
"뭐긴 뭐야. 토마토지."
"잘 영근 거 같은데 한 개 따 보까?"
"어. 안 그래도 억수로 목마르다. 안 씻어도 무도 되나?"

"하(당연하다를 의미하는 말)! 이르케 쓱쓱 딲아가 더블 때 무면 을매나 맛있그로?"


할머니가 몸빼바지에 여러 번 닦아 건네준 토마토.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미지근하고 시큼한 맛이 입속을 가득 채웠다. 마트에서 산 것처럼 껍질이 부드럽진 않았지만 탱글탱글함과 시큼함 속에 감춰진 단 맛을 잊지 못한다.


'토마토는 본래 그런 맛이었지' 생각하면 대형마트에 누워있는 토마토들이 사뭇 이상하게 느껴진다. 못난 것 하나 없이 일정한 크기와 모양을 한 토마토. 비닐하우스에서 탄소를 엄청나게 소비하고 탄생했을 토마토. 할머니 밭에서 보았던 못난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자연스레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변할 때마다 제철음식을 약처럼 찾아먹는 사람이 되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집으로 완성된 음식도 식재료도 가져다주는 세상이지만, 나는 채소를 직접 키우거나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 그리고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기억할만한 일들을 떠올리면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채우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한 여름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마시던 맥주의 청량감. 눈 덮인 덕유산 향적봉 정산에서 먹었던 차갑게 굳은 주먹밥과 컵라면의 온기. 태풍경보가 내린 대만 여행에서 먹을 것을 못 구해 쫄쫄 굶고 있었는데 게스트하우스에서 끓여줬던 우육라면. 그 밖의 이야기를 품은 많은 음식들. 그래서 가끔 '이상하다. 왜 전에 먹어본 맛이랑 다른 것 같지?', '그때 먹었던 삼겹살이 찐이었는데' 하는 감상은 기분 탓이 아닐 거다. 무엇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음식의 맛을 돋우는 최고의 조미료를 주변의 환경일 테니까.


'어떤 음식'하면 떠오르는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색깔로 풀어보고 싶다. 그냥 두면 눈처럼 흩어지거나 녹아 없어질 이야기들을 동그랗게 빚어 보려 한다. 눈사람처럼 어느새 녹아버릴지라도 만드는 과정에서 잠시라도 미소 지을 수 있으니까.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때처럼 내게는 그런 순간들이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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