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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Mar 24. 2024

엄마가 암에 걸렸다.

여성의 부재로 드러나는 돌봄 공백

  엄마가 암에 걸렸다. 몇 년 전부터 가슴에 몽우리 같은 게 만져진다고 했다. 빨리 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수차례 권유했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게 이유였다.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한다던 그녀는 쉬지 않고 왕복 250km를 넘나들며 암과 약간의 치매증상으로 요양병원에 계신 할아버지, 거동이 불편하신데 혼자 지내는 할머니, 딸과 조카가 낳은 아기들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마치 삶을 마감을 앞둔 사람처럼. "아니, 엄마 없으면 세상이 안 돌아가는 줄 알아?" 카랑카랑한 내 목소리는 공기 중에 흩어질 뿐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을 딸에게도 먼저 알리지 않았다. 평소 각별하게 지내는 막냇동생 그러니까 나에게는 삼촌만 알고 있었다. "아니,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왜 내가 삼촌을 통해서 들어야 해?" 나의 서운함은 늘 이런 식으로 표현됐다. 


  엄마는 치밀하게 보험을 준비하고, 시기에 맞춰 건강검진 날짜를 잡고, 결과에 따라 전문병원에서 재검을 받고, 수술을 잘한다는 대학병원에서 예약까지 마쳤다고 했다. 수술을 받고 나면 입원기간 동안 자신을 돌봐줄 요양보호사도 퇴원 후 지낼 요양병원도 미리 알아뒀다고 했다. 그 모든 과정을 누구의 도움도 마다하고 스스로. 혼자서. 수술 전날까지 하루에 두 시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할머니의 장기요양급여비용 계산이 이번은 누구 차례인지 챙기던 그녀였다. 그녀가 수술대에 오르고 요양병원으로 옮겨지자 그동안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손녀와 삼촌들 전화기에 불이 났다. 엄마의 투병소식을 모르는 할머니는 딸이 집에 안 온 지 두 달이나 됐고, 연락이 잘 닿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나는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할머니의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정작 시골에 다녀온 지 두 달 보다 더 한참 되다는 사실 때문이다. 할머니는 과거 5명의 자식을 낳았다. 서울에 계신 큰삼촌, 15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이모, 가까이 거주하는 둘째 삼촌, 엄마 그리고 막내삼촌. 할아버지 할머니는 늘 "잘 키운 자식은 내 아들이 아니라 나라의 아들"이라며 자신들을 살뜰히 챙기지 않는 아들들을 변호해 왔다. 삼촌들처럼 잘 키워지지 못한 탓일까. 남매들 중 직업이 가장 불안정한 엄마는 항상 돌봄 노동을 자처해 왔다. 


  이번주는 엄마 대신 내가 할아버지의 요양병원과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다녀왔다. 암으로 신체 절제 수술을 받은 엄마의 병문안 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뵙는 게 더 엄마를 돕는 일이라던 말 때문이다. 엄마는 간식이 떨어졌을 테니 꼭 사서 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오랜만에 손녀를 만나 기분이 좋은 할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를 돌봐주시던 요양보호사님도 엄마를 찾았다. 무슨 일 있으시냐 여쭤봤더니 "그렇게 자주 오시던 분인데, 병원에서 못 본 지 두 달이 넘은 거 같아 물어본다"라고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이따금씩 기억을 잊어버리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할머니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해서 나를 괴롭혔다. "요즘 일이 많이 바쁘대. 어제 통화했는데 목소리는 좋던데?"하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엄마 대신 냉장고에 반찬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먹을 것을 채우고, 설거지를 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 모든 일들을 해치우고 집으로 돌아가면 나의 몫으로 남겨져 있을 일들을 떠올리면서.


  집으로 돌아온 뒤 외갓집 단톡방에 엄마대신 글을 올렸다.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오늘 병원이랑 시골에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요. 할아버지 가슴에 오백 원 동전보다 큰 멍이 들어있는데 할아버지는 기억이 없으시고 요양보호사께서는 노인이라 주사 맞을 때 살짝 눌러도 멍이 든다고 하십니다. 경황이 없어 사진을 찍어 오진 못했는데, 제가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누군가 해코지 한 건 아닌가 걱정이 돼요. 그리고 할머니는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이발이 필요합니다. 요양보호사께서 택시 타고 다녀오라고 하셨다던데, 한 달에 두 번 목욕차가 올 때 빼고는 마당에도 안 나가시는 분이 어떻게 읍내에 혼자 다녀오시겠어요. 조만간 시골에 방문하실 분이 계시면 챙겨봐 주세요." 삼촌들은 그제야 대화를 시작했다. 요양병원 간호사실에 전화해 보겠다는 큰삼촌. 할머니와 미용실에 다녀오겠다는 둘째 삼촌. 시골에 간다는 둘째 삼촌에게 할머니 돈이 안 떨어졌는지, 할머니 땅에 붙이는 사람이 나락값을 줬는지, 작년 직불금은 들어왔는지 통장정리로 확인해야 한다며 비밀번호와 함께 미션을 주는 엄마. 그러고 보니 내가 메시지를 남기기 전 마지막 문자도 엄마의 지령이었네. 오고 가는 대화를 보며 나는 마음속에서 봉숭아씨앗 같은 것이 톡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실제 암에 걸린 사람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저를 엄마처럼 돌봐주는 이모입니다. 특수한 가족관계를 모든 이가 공감하긴 어려울 것 같아 이모를 글쓴이의 엄마로 설정하여 재구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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