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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May 11. 2024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소아과편

  오늘도 '닥터펭귄' 애플리케이션을 연다. 얼마 전까지 다니던 병원 예약은 매달 이용료를 내야 하는 '똑딱'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야 가능했는데, 이사 온 동네에 인기 있는 병원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닥터펭귄'이라 좋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접수는 마감. 아기의 몸을 구석구석 확인해 주고 설명도 상세히 해준다는 이유로 인기 있는 선생님은 오늘도 만날 수 없다. 온라인 예약을 하지 않고 현장에서 접수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방법은 선호하지 않는다. 우선 현장접수는 선착순이다. 시간을 내어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착한 시간에 하필 마감이 되어 진료를 보지 못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만약 접수가 가능하더라도 미리 예약을 하고 온 사람들이 우선이기 때문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순번을 등받이도 없는 소파에 앉아 주야장천 기다려야 한다. 아기의 밥시간, 낮잠시간과는 상관없이. 안 그래도 아픈 아기가 잘 먹고 잘 자야 컨디션이 좋아져 회복될 텐데 소아과에 가서 대기하는 동안 아기의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육아를 하는 나는 갈등한다. '단순 열일수도 있는데 일단 해열제를 먹여볼까? 아니지 아니지. 혹시나 골든타임을 놓쳐서 폐렴이나 중이염이 오면 어떡해. 빨리 병원에 가자!'


  나는 아기의 컨디션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평소 바이오리듬에 맞추고 집 앞에 있는 인기 없는 소아과를 방문하기로 한다. '똑같이 국가고시 합격한 의사 선생님들인데 진료가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하고 손가락이 느려 온라인 접수에 실패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첫 번째 낮잠을 자고 일어난 아기의 식사를 챙기고 나왔더니 오전 11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그날은 진료 중인 선생님이 세 분 계셨는데, 원장님은 특수분야 전문가라 일반진료를 보지 않으신다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만 39도 이상 열이 나는 것을 처음 본 나는 '엄마한테는 애한테 열이 나는 게 특수한 상황인데, 당신들에겐 이게 일반적인 일이군요'하고 속으로 빈정거려 본다. 그나마 인기가 있는 젊은 선생님은 이미 접수 마감. 지금 접수하면 오후 4시나 돼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몸이 뜨거워진 아기는 보채기 시작한다. 하는 수 없이 이상하리 만큼 대기가 없는 선생님께 진료를 받기로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은 나와 아기가 등장하자 황급히 유튜브 화면을 내리셨다. 그리고 헤드셋도 벗지 않고 진료를 보셨다. 분명 간호사님이 진료실 문 안에서 확인을 하고 이름을 호명했을 텐데. 살짝 언짢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도 근무시간에 짬이 있으면 핸드폰도 보고 간식도 먹고 하는데 뭘'하고 좋게 생각하려 했다. 선생님은 청진기의 동그랗고 차가운 부분을 통해 아이의 가슴과 등에서 느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이 없다고 했다. 치과에 가면 있을 것처럼 생긴 얇고 긴 총 모양의 기구로 콧구멍과 귓구멍을 봤다.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이스크림 막대기 같이 생긴 스테인리스로 아이의 혀를 눌러 빛이 나는 기구로 목구멍을 봤다.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왕 온 김에 원인을 찾아야 되니 혈액검사, 소변검사, 독감코로나검사를 권했다. 하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원을 하라고 했다. 황당한 나는 되물었다. "방금 다 괜찮다고 하셔 놓고 아직 검사결과도 없는데 무슨 입원이요?" 선생님은 입원해서 열을 내리는 수액을 맞을 예정이라 했다. 외래진료와 입원진료 시 해열제 처방에 차이가 있냐는 질문에는 말꼬리를 흐렸다. 결국 큰 차이가 없지만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 중이면 혹시나 열이 더 올랐을 때 대처하기 빠르기에 입원을 권유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어린아이 입원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고통이다. 특히 만 1세 미만 영아의 경우 챙겨야 할 짐이 상상을 초월한다. 단순 외출이 아니기 때문에 이유식, 분유, 간식, 기저귀뿐만 아니라 목욕용품, 전기포트, 식기세정제, 수세미 등 먹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야 한다. 아이의 성향 따라 다르겠지만 잠을 자게 도와주는 입면템(인형, 백색소음기, 쪽쪽이)이 필요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많은 장난감을 챙겨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몸이 아픈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까지 해야 해 평소보다 더 많이 보채거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숱하게 들어왔던 무시무시한 '어린아이 입원썰'에 대해 떠올리다가 입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 전 뉴스에서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서 소아과 폐과를 선언하던 모습이 생생한데, 소아과는 왜 이토록 붐비고 비급여 항목을 권유하는 걸까. 집에 돌아와 겨우 잠든 아이 옆에서 평소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소아과 관련 문제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저수가, 감정노동, 사법 리스크의 3중고. 저수가로 인해 상급병원에서도 소아과 전문의 고용을 꺼려서 고용시장에서 수요가 적고 개원을 해도 다른 전문의에 비해 수익이 최하위이다. 즉, 돈이 안된다는 것이 소아과의 가장 큰 기피 원인이다. 그나마의 수익처였던 소아예방접종 또한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되면서 타격이 컸는데 이로 인해 소아과의 수익은 '진료비' 단 하나가 되었고 저출산+코로나의 콜라보가 치명타를 날린 것. 이로 인해 개업보다 폐업이 늘고 이걸 보는 의과학생들은 미래가 없는 소아과를 기피하게 되었다.

  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수입이 낮은 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의료시스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피부 미용과 같은 비급여 항목들이 주를 이루는 과는 예외지만, 내과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처럼 건보로 대부분의 진료가 이루어지는 관들은 특정 행위별로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행위별 수가제). 예를 들어 진료가 이루어지면 기본 진료비가 있을 테고, 거기에 어떠한 처치를 한다면 (드레싱을 하거나 이물제거를 하거나 봉합을 하거나 등등) 그 처치에 대한 수가가 추가로 발생한다. 내과는 기본 진료비뿐만 아니라, 각종 혈액검사나 초음파 등의 검사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국가검진을 통해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비인후과는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시술 하나하나에 처치 수가가 발생하며 간단한 수술도 할 수 있다. 반면 소아청소년과는 기본 진료비 외에 수익을 올리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협조되지 않는 어린아이들 대상으로 처치나 시술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귀지 제거와 같은 것들은 소아 보호자들은 당연하게 진료비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해서 똑같이 일했을 때 다른 과에서 1시간 동안에 벌 돈을, 소아청소년과에서는 3시간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셈이다. 그 3시간마저도 아이들의 악쓰는 울음소리와 발길질, 진상 보호자들의 터무니없는 질문과 요구를 들어주면서 버텨야 한다. 그러니 어느 의사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살아가고 싶겠는가. 이미 붕괴된 시스템은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아청소년과-나무위키 발췌>


 

  소아과에 지원하는 의사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인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경남에서는 비교적 큰 도시인 창원에 거주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방문할 수 있는 병원은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래서 보호자는 새벽부터 병원에 오픈런을 하거나 애플리케이션 유료 회원권 가입 및 광클릭을 해야 한다. 한 번은 9시 50분 타임 진료에 예약 성공한 적이 있는데, 실제 진료는 12시 넘어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오픈런을 하더라도 의사가 볼 수 있는 환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소아 특성상 성인에 비해 진료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불만에 창녕군에 거주 중인 친한 언니는 "다행이라 생각해. 나는 저녁 6시 넘어서 애가 아파서 두 시간 반 운전해서 대구까지 응급실에 갔었어"라고 했다. 언니가 겪었을 상황들을 상상해 보니 간담이 서늘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아과의 불이 꺼지고 얼마나 많은 도시가 의료 사각지대로 변할까. 정말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 되어간다. 나는 무작정 입원을 권유하던 선생님을 불만해야 하는 걸까 이해해야 하는 걸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언젠가 한 대학병원에서 아이의 4개월 예방접종을 맞히고 나오던 길에 소아과 교수님과 나누던 대화를 떠올려 볼 뿐이다.


"오늘 맞은 주사 중에 폐구균주사라는 게 있는데 이게 열이 꽤 나는 주사입니다. 아기들은 성인과 달라서 기초체온이 37도 정도로 조금 높은 거 아시죠? 아기들은 38도 이하는 미열, 38도 이상이면 고열로 보면 되고요. 38도 이상 열이 나면 해열제 먹이시면 됩니다.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안 떨어지고 38.5도를 넘는다. 그러면 당황하지 마시고 빠르게 응급실로 내원해 주시면 됩니다. 아기들은 성인과 다르게 고열이 매우 위험하거든요."

"요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새벽엔 소아과 안 받아준다고 들었는데 언제든 와도 되는 거 맞나요?"

"다른 병원은 일정시간 지나면 안 받거나 개월수 제한이 있는 걸로 알고요. 저희 병원은 아직까진 어떻게든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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