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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vus Dec 12. 2020

33. 긴 여정을 거쳐 대학교로

  많은 일을 겪었다. 자퇴가 가능한 가장 어린 나이에 자퇴하고 만 15세에 혼자 살기 시작했다. 이후는 우울증으로 얼룩진 시간이었고, 유학을 준비하기도, 수능을 준비하기도 했다. 우울증을 치료받으며 증세가 조금 나아진 뒤로는 부족한 수준이더라도 조금이나마 수능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항상 고민했던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알아내고 이해하고자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5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꼭 마무리 지어야만 했던 목표인 대학교 진학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진행한 각종 실험과 프로젝트를 가지고 수시 전형에 지원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합격한 것이었다. 가족의 기대나 어릴 적 나 자신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대학교였지만 그래도 나는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이 없었고, 수년간 반복되어 온 계획과 좌절의 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결국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느껴졌던 나만의 탐구 활동을 누군가 인정해 주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더해서 지원한 전형의 수석 합격자로 장학금의 기회가 있어 더 매력적인 선택지로 여겨졌다.



합격 발표를 듣고 나서


  대학에 합격한 이후, 나는 더 열심히 내가 가진 의문점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철학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실제로 상담을 받기도 했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러 타인의 인생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회에 다녀오고, 해보고 싶어 계획했던 실험을 하고, 가고 싶었던 장소에 다녀왔다.


  이전에 한 번 언급한 상담 선생님의 표현, '너는 감정을 배우려는 로봇 같다'라는 표현은 이 시기 상담을 받으며 듣게 된 말이었다. 내가 상담을 받게 된 계기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은 맞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앞으로 할 일에 부족한 사회성이 걸림돌이 될까 봐'였다. 사회성이 부족해 외롭거나, 친구를 더 사귀고 싶다거나 하는 동기는 아니었다. 더하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들을 실제 적용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려는 목적도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이런 독특한 면을 발견하고 물어보고는 하셨다. 발달장애가 의심된다는 말을 병원에서 듣고 나서도, 그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 없이 나를 정의하게 된 새로운 항목, 앞으로 탐구해볼 새로운 상태가 생겼다는 점에 신기함과 약간의 즐거움마저 느끼는 나를 보고 이런 방식으로 인식하는 나를 언급하시기도 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성장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는 감정을 유발하는 상황에 놓여도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하셨다. 이런 부분은 대학교에 다니며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나아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학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가장 친밀한 사람이 생기며 어느 정도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사람에 관심이 없고, 높은 벽을 쌓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단지, 아닌 척을 좀 더 그럴싸하게 해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쓰려는 글은, 비록 발달장애가 영재성에서 기인했다고 하더라도, 발달장애에 대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려 한다. 대학교는 발달장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영재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내 영재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닌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모인 첫 사회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영재는 초등학교부터 겪었을 일들을 나는 대학교에서 겪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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