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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 냥이 Aug 11. 2016

데니

너의 기억으로

지금 나의 실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영혼은 그녀를 통해서만이 아직도 세상에 존재할 뿐이다.


나는 9마리의 형제 중 제일 나약하게 태어났고 형제들에게 밀려 먹는 것도 변변하지 못해서 가장 약하디 약한 존재였었다. 그런 나를 가엾게 여겨 그녀가 키우기로 했다.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그녀의  유일한 유아독존 이었다.

그녀의 아이가 태어나는 해에 연예인 노주현 씨의 아들이 개털들 때문에 죽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자 그녀의 남편이자 나의 경쟁자는 그녀가 출산하러 서울로 가게 된 것을 기회로 그녀와 상의도 없이  나를 밖에다 키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울 친정에 나를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그곳에는 동물 털 알레르기 있는 사람과  동물을 싫어하는 노처녀로 인해 나는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녀가 없는 동안 내가 밖에서 생활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녀는 매일 그녀의 남편에게 나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그녀가 3달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는 나는 이미 밖의 생활에 적응이 되어 있어서 다시 실내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집 밖으로 밀려난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밖에서의 생활이 더 자유롭고 좋왔다. 마음껏 뛰어놀고 친구들 보러도 자유롭게 다니고 단 외박은 절대 할 수없었다. 내가 밖에서 지내니 그녀는 내 걱정 때문에 수시로 밤에 불시 검문을 한다. 그녀가 불시검문을 했을 때 내가 없으면  그 밤에 온 동네를, 내 이름 <데니>를 부르며 찾으러 다닌다. 그래서 내가 그녀 몰래 밤마실이라도 다닐라 치면 그녀가 잠들었는지 꼭 확인해야 했으며 또한 굿모닝 아침인사를 그녀와 꼭 나누어야 했다.

외박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나의 연애사는 힘들었다.

또한 그녀는  개들(수컷)이 바람나면 집 나간다는 소리에 집착을 하며 혹시나 나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신경 썼다. 그래도 그녀는 나의 목에 개목걸이를 해서 묶어 두지는 않았었다. 그녀가 나를 향한 애정은 언제나 변함없었다. 나 또한 그녀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다른 수컷들처럼 암컷들 쫓아다니냐고 집을 나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언제나 절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기다릴 그녀를 위해서..........

그녀의 아이는 그녀를 닮아서 나를 무지 좋아했었다. 단지 흠이 있었다면 그 애가 걷기 시작하면서 내 밥에 자꾸 손을 대거나 막대기 같은 것으로 나를 찌르고 또 나를 넘 험하게 만진곤 할 때면 그녀 몰래 혼을 내주긴 했지만, 그 애의 우는 소리에 그녀가 달려와 "데니 너는 형이잖아 동생한테 그럼 되니"라는 서운한 말만 돌아온다. 그 애로 인해서 나는 서서히 이인자로 밀리고 있었다.

가끔 그녀가 내게 말을 할 때 옆집 아줌마가 보는 날이면 "새댁 개가 뭘 안다고,,ㅋㅋ개보고 말을 해 "라고 나를 무시하는 말을 던지곤 했다. 그녀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개에게 혼자 말을 한다며 동네방네 그녀를 이상하고 특이하다고 소문을 내기도 했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녀는 조금은 특별했다.



옆집 아줌마가 나를 개 무시해도 그녀를 미워할 수없었던 이유는, 그 집에는 늘씬한 엔젤이 있었다.

나의 숏다리에 비해 엔젤은 나보다도 키가 큰 롱다리의 암컷이었다.

나는 언제나 엔젤을 나의 여자로 하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숏다리로는 불가능했다. 나의 불행한  짝사랑으로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녀가 엔젤을 육포로 우리 집으로 유인을 한다.

나는 왜 그런지 잘 몰라서 쳐다보고 있는데, 나와 그녀의 남편을 급히  부른다.

그녀는 엔젤의 목줄을 잘 잡으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육포를 건네며   우리 집 가장인 그에게 벽돌을 옮겨 달라고 부탁한다.

"거기 보이는 벽돌 있는 것을 엔젤 뒤에다 놔줘"

"왜, ,,"


짜증스럽게 묻는 그다. 이해가 갔다. 휴일이라 자려고 했는데, 그녀가 급하게 불러서 나왔음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 앞에서만 나를 이뻐하지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나를 학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괴롭혔던 인물이다.

나를 키우면서도 개고기를 먹고는 뼈를 가지고 와서 나의 밥그릇에 담아 놓는 못된 장난도 했었다.

그는 우리 같은 개들을 음식으로도 생각했다. 하긴 우리나라의 정서를 생각하면 이해도 된다. 그는, 동물은 집안에서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를 실내서  키우게 된 것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한 조건에 나를 집안에서 키우기로 했던 것이다. 결혼하고자 하는 그는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했다. 그리고는......

그녀와 함께 침대에 있으면 그녀 몰래 나를 발로 차며 침대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었다.

나도 나름 눈치를 채고는 그가 회사일로 집에 안 들어오는 날만 그녀와 함께 침대에서 잤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그녀가 오라고 부르면  못 이기는 척 침대에 오르긴 했지만 그 뒤의 후유증이 컸기에 나중엔 그가 있을 땐 절대 침대에 가지 않았다.

그땐 그가 집에 들어 오지 안기를 얼마나 기도 했는지 다행히도  나의 철없는 기도 빨은먹히질 않았었다.


"그리고 데니를 벽돌 위에 올려줘"

"뭐야.... 야~ 넌 이러고 싶니"

"그럼 어떻게 데니가 엔젤하고, 하고 싶어 하는데 다리가 숏이라 안되잖아... 그러니 내가 도와줘야지"

나는 무지 감동도 받았고 황당하기도 했다.

아무리 내가 개라도 그녀가 보는 앞에서 어떻게 그런 행위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본능이 앞서는 내 몸뚱이는 엔젤위에 올라타려고 했다.

그런데 엔젤이 거부한다. 우우

그날의 일을 생각하니 부끄럽다. 처음부터 안 한다고 했으면 자존심은 챙겼을 텐데..... 나를 거부한 대가를 엔젤도 톡톡히 당하긴 했다. 한동안 그녀가 엔젤집근처로 오는 수컷들을 다 쫓아 버렸다. ㅎㅎ

나의 그녀는 그렇게 특별했다.

 


나의 그녀는 결혼하고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았다.

우리 집 가장이 죽자 사자 쫓아다녀 결혼한 그녀였지만 결혼은 둘만의 문제가 아님을 그녀의 결혼생활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했다. 나의 작은 위로를 그녀가 알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그녀의 손등에 내손을 얹어 주어 위로했다. 그럴 때면 그녀의 눈에 항상 반짝이는  것을 나는 보았다.

요즘 TV이나 SNS를 통해서 동물들의 재롱을 소개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신통한 것이 아니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일반 동네 강아지였었지만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했고, 혼날 일이 있으면 구석에 서서 손들고 벌을 받았고, 함께 공놀이도 했고 , 오른손 왼손 하면서 그녀가 말하면 그 소리에 맞추어서 손을 내밀어주었고, 어릴 때 부터대소변은 기본으로 잘 가리고, 말하자면 말귀를 알아 들었다. 어느 날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갔더니 "어머~이 애는 진짜 강아지네"라며 그녀를 보며 비웃는 이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똥개를 병원에 데리고 온 것이 그들에게 가소로워 보였던 것이다. 그 당시로는 나 같은 강아지가 병원 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런 것에 기죽지 않고 그녀들에게 말했다."우리 데니는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영특해요"

나는 진짜 누구 보다도 영특했다. 아마 그것은 그녀의 교육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덕이리라.

그녀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나와 함께 놀 수준이 되었고 그 아이와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그녀는 어느 날부터는 남편회사 사람들 가족들과의 관계로 바빴고 급기야는 내가 항상 아이와 함께 있어줘야 했다. 그런 나를 그녀는 더욱 사랑해 주었고 나와 아이는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시댁에 갈 때도 항상 나를 데려가는 문제로 신경전이 벌어지긴 했었지만 가끔씩은 양보하지 않고 나를 데려가 주어서 나는 기뻤다.

그녀는 그렇게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그녀 곁을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를 잃어버리고  밤낮을 울며 불며 찾으러 다니는 것을 가슴 아프게 다 지켜보았지만, 나는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나와 비슷한 강아지를 보면 내 이름을 부르며 차를 아무렇게나 세우고 달려가는 그녀를 볼 때면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를 잃어버리기 얼마 전부터 그들 부부는 나로 인해서 의견이 맞지 않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몇 개월 뒤에 이사 갈 집이 아파트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다시 실내에서 키우면 된다고 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생각이 달랐다. 나를 누군가에게 주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녀는 고민이 많았었다.

그녀가 나를 잃어버리고 더 많은 죄의식에서 많이 울었던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단호하게 데려간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의 거취로 고민했던 자신을 더 많이 탓한 것이다.

그녀의 아이 또한 나를 더 이상 찾지 않고 가슴에 묻었다. 그 애는 어렸지만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봐 나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 그들은 편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나를 생각하게 되면 눈물을 그렁였다.

어느 날인가는 그녀가 앨범 정리를 하면서 나의 사진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를 한다고 따로 챙겨두더니.... 그 이후로 찾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엔 그날 책장도 함께 정리하면서 버려지거나 책 속에 묻혀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남아 있는 내 사진들은 그녀가 결혼 전에 놀러 가서 찍은 사진들과 중요치 않은 사진 몇 개뿐인 것 같다. 그것도 그녀를 괴롭히는 하나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요즘 SNS를 통해서 고양이나 다른 강아지들에게 열광하고 있다.

충분히 이해된다.  그 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선명한 기억으로 나를 잊지 않고, 또 아직도 가끔은 아파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그녀와 나는 6년을 함께 살았고, 나와 헤어진 지 18년이 지났다. 정말 세월은 유수와 같다.

나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그녀는 흰머리도 생기고 얼굴에 주름도 지고 세월은 그녀의 젊음을 자꾸만 가져간다.

이젠 나도 그만 쉬어야겠다. 그녀의 옛 모습만을 간직하고 영원히 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그녀가 나를 보내준다면......

그 애를 잃어버린 그녀의 아픈 기억이  그 애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애와 함께여서 행복했었던 날이 더 많았었는데....

요즘 같이 각박한 현실에서 반려동물들과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면, 좀 더 마음이 넉넉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녀가 데니를 키우면서 교감을 나누었던 모든 경험을 생각해보면 데니는 많은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였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들을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살다 보면 그들에게 위로받고 행복해지는 자신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데니를 아픔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에게 힘들었던 심리적인 여러 가지 잔상이 함께 떠올라서 더 슬퍼지는 데니의 과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젠 흐르는 강물처럼 데니의 모든 것을 편히 보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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