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iq Aug 13. 2016

메리의 눈

P.S. 지금도 여전히 보고싶은 너란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충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여기는 지 가늠하기 쉬울 때가 많다. 그만큼 눈은 입을 대신하여 많은 말을 한다. 심지어 동물의 눈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반려동물을 오래키운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그는 "응, 난 우리 해피(애견네이밍의 철수, 민수)가 무슨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있어!" 라고 답할 것이다. 믿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우리집 막내아들을 담당하고 있는, 푸들 만 1세 '만쥬'를 예로 들자면, 나는 그 놈의 삐침, 짜증, 두려움, 갈망, 귀찮음, 졸림, 신남 등을 구분할 수 있다. 물론 그 녀석의 풍부한 바디랭귀지가 때로는 더 많은 단서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단연코 그의 눈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할 수 있다.


만쥬가 오기 한참 전, 우리집에는 나와 내동생의 초중고 시절을 함께한 메리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동네에는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았다. 메리는 떠돌이 개였던 어미가 쓰레기 더미에 낳은 새끼 중 한 마리였고, 어쩌다 강아지들을 보게 된 나와 내 동생이 입고 있던 옷에 정성스레 싸안고 집으로 데려왔다. 저녁준비를 하던 엄마는 강아지를 보고 한 번, 엉망이 된 옷을 보고 두 번 소리를 질렀다. 화를 냈지만, 목욕물을 데우고, 투덜댔지만 털을 말릴 드라이기를 뛰어가서 사오던 엄마가 어른 손바닥 크기의 그 녀석을 메리라고 이름붙였다.


한참을 집에서 지낸 메리는 똥오줌을 가릴 줄 몰랐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소용이 없어 집엔 온통 메리를 쫓아다닌 걸레질의 락스냄새가 진동했다. 어쩔 수 없이 마당으로 거처를 옮긴 메리는 한동안 우리에게 '삐침'의 눈빛을 보냈다. 대신 그 녀석은 자유를 얻어 해가 뜨면 동네를 쏘다니며 개들과 어울려 놀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맞았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메리는 날이 밝아도 대문 밖을 나설 생각을 하지 않고, 마당에만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가족들도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했고, 비싸다는 강아지용 간식캔까지 대령해 기운을 일으켜보려 애썼다. 환장하던 먹을 것에도 전혀 반응이 없으니 불현듯 부모님은 메리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고, 그 곳에서 급성장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술을 해도 확률이 낮고 수술비도 어마어마해 차마 똥개 수술시키라고 말 못하겠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도 부모님은 나와 동생 몰래 수술을 시켰다.


수술 후 메리가 입원을 하고 지내던 그 며칠 간, 엄마아빠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우리가 입을 상처가 걱정이 되어 차마 메리의 위독함을 전하지 못하며 전전긍긍 하셨다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메리는 깨어날 수 있었고, 부모님을 따라 병원에서 메리를 만났을 때, 콧잔등이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눈물을 흘리던 메리의 눈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 얇은 목에 보기에도 안쓰러운 둥근 보호대를 찬 어린 생명에게서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감정의 존재를 확인했다. 퇴원 후 메리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나름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8~9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둥지를 떠나 서울에 터를 잡으며 치열하게 적응해 나가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고, 울먹거리는 수화기 너머로 메리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없어진 지는 며칠이 되었다고 했다. 그간 새벽에도 벌떡벌떡 잠이 깨, 정신없이 골목을 후비고 다니며 찾았지만 찾을 수 없더란다. 그리고 문득 메리가 없어지기 전 기억이 떠올라 찾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어린 우리가 장성하고 내가 집을 떠나며, 메리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매번 퇴근하는 엄마를 마당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맞아주던 메리가 어느날 다리에 힘이 풀리며 픽 주저앉았다. 놀란 감정과 복잡한 심경이 뒤엉킨 엄마를 메리 역시 멋쩍고 숙연하게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리에 치대며 애교를 부렸다. 엄마는 도리어 모른척 자신을 달래는 듯한 메리의 행동에서 불현듯 이별을 직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은 해가 지도록 메리를 쓰다듬으며 그 곁을 한참 지켰다.


엄마는 메리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기 싫어 집을 떠난 것일 거라며, 메리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지었다. 그렇게 메리가 사라지고 이주 정도 지난 주말 오후, 안방에 누워 있던 엄마는 낯익은 개짖는 소리에 한달음에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소리가 나는 곳은 우리집 담벼락 너머의 건물 주차장 쪽이었고, 그 곳에는 예상대로 메리가 엄마를 올려다보며 짖고 있었다. 엄마는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부르며 빨리 집으로 오라고 소리쳤단다. 하지만 메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를 응시하며 계속해서 짖었다고 한다. 순간 엄마는 마치 메리가 무어라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만 같아 말을 멈추고 그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고, 그렇게 몇 분이나 엄마를 바라보며 짖던 메리는 한껏 꼬리를 흔들고는 골목끝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 날, 메리는 우리 가족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을 기억하며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진지하게 엄마를 바라보았던 그 눈빛에 우리가 헤아리지 못한 수많은 말들을 담아서 말이다. 그렇게 어떤 이별보다 진하고 아름답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름답지만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기에 아직도 메리는 우리를 울릴 때가 많다. 그 소소하고도 짠한 기억들로 인해 엄마는 더 이상의 반려견을 들이지 않겠노라 선포를 했다. 엄마의 결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당 한 켠 메리가 살던 집은 몇년이나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그렇게 철옹성을 드리웠던 엄마의 마음도 결국 동생이 막무가내로 데려와 안기운 만쥬의 애교에 봄눈녹듯 사그라들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만쥬는 우리의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길었던 메리와의 시간과, 아직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만쥬에게서 나는 정말로 눈을 통해 대화를 나눈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가끔 이것이 그 ‘교감’이란 것인가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전히 순간순간 만쥬가 부리는 짜증은, 여자친구가 토라진 이유를 찾아내는 것 만큼 알아내기 어렵지만 이렇게 조금씩 반려동물과의 생활의 균형을 맞춰가나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