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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in Lee Aug 14. 2016

흰둥이 이야기

나의 첫 흰둥이.

흰둥이는 잘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밥은 잘 먹을까. 아빠가 되었을까. 그리고,

나를 기억은 할까.


흰둥이를 처음 만난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는 나는 동네에서 스치는, 혹은 눈이 마주치는 강아지들을 볼 때

가끔씩 흰둥이 생각을 한다. 흰둥이를 못 보게 된 십오 년 전부터.

갑자기 나타나 갑자기 사라져 버린 나의 첫 흰둥이를.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친구집에 가면 꼭 한 마리씩은 있는 강아지가 무서워

친구방으로 소파 위로 베란다로 강아지를 피해 허겁지겁 뛰어다니곤 했다.

또 학교에서 돌아와 피아노 학원으로 가던 골목길 끝에 강아지가 보이면 

지레겁을 먹고 빙-돌아 지각하기 일쑤였고,

사실은 지금도 오전 여섯 시 사십오 분쯤 출근하려 집을 나설 때 어김없이 

나를 향해 불쑥, 쏜살같이 달려나와 앙앙 짖는 어느 강아지가 무서워

그 시간 그 길을 지날 때는 손으로 귀를 막기도 한다. (피하진 않는다!)


흰둥이는 이런 내가 친해진, 첫 강아지다.

흰둥이는 집주인 아저씨의 강아지였고, 우리는 우리 집 안방 창문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집은 조금 신기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밖에서 보면 지하 같지만 언덕에 걸쳐 있는 집의 특성 상 

주인집 2층에 위치해 있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그러니까 방 창문을 열면 바로 주인집 정원이 있는 구조인데

(난 우리 집에서 이 곳이 제일 좋다. 문만 열면 달도, 꽃도, 비도, 바람도 보이는 곳) 

우리는  바로 이 창문을 사이에 두고 처음 얼굴을 마주보았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나는 괜히 눈이 마주치면 나를 향해 짖을 까봐 창문 뒤로 숨거나 창문을 닫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길.  강아지 한 마리가 저-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걸 

느낀 나는,  늘 그래왔듯 내가 빙-둘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문득 ‘혹시 흰둥이?’ 라는 생각이 들었고,  눈을 한껏 찡그리며 그 강아지를 다시 쳐다보았다.

(나는 눈이 나쁜데 평소에는 안경을 쓰지 않아 무언가를 볼 때 꼭 눈을 찡그린다.)

그리고 나는 그 강아지가 흰둥이라는 걸 확신했다. 왜냐하면 그냥 그랬다.

정말 이상하게도 무섭다거나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갔고 흰둥이도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강아지가 내 시야에 들어와있음에도 피하지 않고 강아지를 향해 걸어간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흰둥이는 얼만큼 걸어오다 멈춰 나를 기다렸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 아이는 꼬리를 살며시 흔들. 흔들.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흰둥이 맞구나!’

흰둥이는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만난 친구네 강아지, 골목길에서 마주친 강아지들과는 달리

앞발을 들어 내 다리를 톡톡 치지도, 멍멍 짖지도, 빙빙 돌지도 않았다.

그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옆에서 뒤에서 따라오고는 

내가 달칵.하고 문을 열자 그제야 꼬리를 한번더 흔들고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갔다. 

마치 집 앞에 데려다 주는 남자친구처럼.

열다섯의 어느 가을날 햇빛이 따꼼하던 그 오후가 나는 이렇게 생생하다. 


강아지의 종류나 생김새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흰둥이는 달랐다. 

신기하게도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기좋아하는 흰둥이를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마주쳐도

나는 흰둥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었고,

흰둥이도친구들과 놀다 나와 마주치면 내게로 달려와

내가 ‘흰둥아! 뭐해?’하고 얘기하는걸 듣고 다시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꼬리를 살며시 흔들.흔들.하며.

주인아저씨가 긴 여행으로 집을 비우신 날에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정원에서 뛰노는 흰둥이를 지켜보기도 했고, 엄마심부름으로 가게에 갔다 오다 우연히 마주치면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대문이 닫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흰둥이를 위해 우리 집 문을 열어두고,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흰둥이를 만나기도했다.

삶이라는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열다섯의 내가 

마음 놓고 웃고 말하고 쉴 수 있었던걸로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장면에 흰둥이가 있었다.


그런 흰둥이가 어느 날 떠났다.

이곳보다더 좋은 시골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들었지만 왜인지 한동안 내 눈은 자꾸 흰둥이를 찾았다.

동네에서 강아지들을 보면 혹시 흰둥이가 있지 않을까 한번 더 보게 되고,

가끔 집 앞에 서성이는 강아지들을 보면 아닌걸 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 ‘흰둥이니?’하고 묻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내가 더 이상 강아지들을 피해 멀리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는 걸.


처음이었다. 사람이 아닌 누군가와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다고 온전히 내 마음으로 느낄수 있었던 순간은.

흰둥이를 통해 나는 강아지가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세심한지,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움과 절망의 순간을 토닥여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많이 다쳤던 열다섯과 열여섯의 나는,

그래도 잠깐씩은 즐거웠고 괜찮았고 좋았다.


사실 흰둥이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

흰둥이는우리 가족과 흰둥이만 아는 이름이다.

낯선사람들이 마음대로 붙인 이름에도 듬뿍사랑을 내어주던 흰둥이.

나의 첫 강아지. 

'흰둥아 뭐해,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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