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씩....
오늘은 그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녀는 깜박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결혼기념일을 자주 깜박한다.
그녀의 결혼기념일 전날이 작은아들 생일이라 잊지 않을 것 같은데도 까맣게 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부분 여자들이 기념일은 더 잘 챙긴다고 하는데...... 무늬만 여자
둘재 아이 5살 때의 일이다.
둘째 아이 생일 케이크는 그녀가 샀는데, 그녀의 남편이 퇴근하면서 케이크를 하나 더 사 온다.
케이크 샀는데 왜 또 사 왔냐고 말을 하려 할까 하다가, 어떤 의미에서 는 또 아빠 가아들을 위해 사 온 거니까
라는... 마음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작은아이 생일 파티는 그녀가 사 온 케이크로 축하파티를 끝냈다.
다음날,
둘째 아이가 자신의 생일파티 때 먹은 초코 케이크 말고, 아빠가 사 온 생크림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녀도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는지라, 몇 조각을 내어서 맛나게 먹고 있는데.... 때 마침 퇴근한 남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아....... 그녀는..... 그날만큼은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의 남편은 결혼기념일에 케이크를 사 오지 않는다.
사실 여자들이 기념일이나 생일에 많은 의미를 두고 선물이나 어떤 이벤트를 기대하는 게 다반사인데,
그녀의 남편은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선물 같은 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도 그런 걸 바라진 않는다.
그녀가 정말 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주 많은 꽃송이를 다발로 받아보는 것이지만,
"꽃은 실용성이 없다"고 말하는 남편을 알기에 그녀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작년 발렌타인데이에 남편이 작은 꽃바구니를 그녀에게 갖다 주어서 아주 놀라기는 했다.
그녀가 원하는 꽃다발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남편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꽃이어서 기뻤다.
누군가에게 끌려서 억지 춘향으로 사들고 왔는지도 모를 꽃 일지라도, 꽃은 그녀를 기쁘게 했다.
남편과는 달리 큰아들은 그녀에게 가끔 꽃 선물을 한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 꽃을 사기도 하고......
"너희들이 독립해도 엄마 집에 오는 날은, 다른 건 필요 없고 꼭 꽃을 사 와야 해"
아이들에게 그녀가 가끔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도 결혼기념일을 깜박한 것이다.ㅎㅎ
남편도 결혼기념일 인 줄 몰랐었다고 그녀는 확신한다.(그는 기억했다고 했지만, ㅎㅎ )
함께 골프 라운드 할 사람이 부득이 못 가게 되어서 그녀에게 라운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대 줄 테니 가자고 해서 그녀도 흔쾌히 승낙했지만, 사실 그녀는 가고 싶지 않았었다.
사실 그녀의 남편과 라운드 하는 날은 이상하게 집중이 안된다. 그들은 골프의 매너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은 축구광이라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갈비뼈와 코뼈가 부러지고 나서부터 치기 시작했다.ㅋㅋ 그녀의 남편은 골프를 운동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실력은 ㅎㅎㅎ)
그녀의 드라이버나 그 외 다른 클럽들이 거리가 많이 나서 남자들과 같은 티에서 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한 명 펑크 나면 가끔 그녀가 대타로 가기도 한다.
그녀도 올해 첫 라운드였다. 덕분에 햇살도, 바람도, 마음껏 온몸으로 즐겁게 누리고 왔다.
기념일이 중요하긴 한 건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으로 되었다.
사실 그녀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함께 살다 보면 포기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괜히 기대해서 기대치를 높이다 곤두박질하면서 실망하고 삐지고 하느니 그냥 편히 살자고 하다 보니 그녀고 그렇게 변한 것 같다.(변명.... 원래 성격)
그래도, 그녀가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있을 때는 식탁에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하지만, 생각처럼 두 사람의 분위기를 내기에는 어떤 아련함이 빠졌다. 결혼생활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심장의 벌렁거림이 없다... 그래도 편한 건 좋은 거다.
그래.... 뭐든 기념일 보다는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안 그런가?
그래 산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