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널 그리다
아버지가 쓰시던 필름카메라를 들고 처음 거리에 나가 찍은 사진이다. 사진 좀 찍는 친구놈이 추천해준 삼청동을 별 생각없이 걷다 우연히 거리의 화가를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사진 뭔가 오묘하다. 화분에 온통 새들뿐이라니, 그것도 날개보다 눈이 더 큰 부엉이나 올빼미들뿐이다. 아저씨는 무슨 생각으로 저 그림들을 그리셨던걸까.
가만 보니 사진 속 새들의 모습, 왠지모르게 아저씨를 닮아있다. 뒤돌아앉아 그림을 그리는 아저씨 위에 하얀 새가 나를 쳐다본다. 나를 쳐다보는 저 눈은 새의 눈일까, 아저씨의 눈일까. 가만히 앉아 날기를 기다리는 저 새들, 붓을 놓고 일어날 아저씨와 함께 날아오를 것만 같다.
가만히 앉은 그대의 손에
작은 몸짓 하나 서서히 피어오른다
허나 날 바라보는 그 눈빛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눈빛 매서운 것은
끝내 오르지 못할 자신을 비웃는 눈웃음 때문인가
언젠간 감아낼 그 눈빛이 나는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