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야 비로소 보게 되는 너와 나의 연
의정부에서 광명으로 이사를 온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며 '이런 날은 집에서 쉬는 게 최고지'하며 마냥 빈둥대고 있던 나를 데리고 아버지는 한강으로 향하셨다. 지금은 여기저기 보수공사를 한 덕분에 시설이 좋아져서 주말만 되면 사람들이 북적대지만, 내가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한강 공원에 딱히 사람이 없었다.
사람도 없는 한강에서 탁한 강물이 묘하게 음침한 기운을 내뿜을 때쯤, 아버지는 말없이 연을 사 오셨다. 태어나 연이란 걸 처음 갖고 놀다 보니 연을 하늘로 띄우는 게 쉽지가 않았다. 손에 연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떻게든 연을 띄워보려 애를 써봤지만, 연은 내 뒤만 졸졸 따라올 뿐이었다.
그걸 한참 동안이나 보고 계시던 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얼레를 조금 풀어 주시고는 다시 뛰어보라고 하셨다. '이래 가지고 연이 땅바닥에 질질 끌리기나 하지 과연 올라갈까'하며 의심 반, 걱정 반으로 연은 보지도 않고 그냥 막 뛰기 시작했다. 숨이 좀 차기 시작할 때쯤 뒤를 돌아봤는데 연이 내 뒤에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녀석이 어디로 갔나 하며 이리저리 살피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그제서야 그놈, 내 뒤가 아닌 내 위에서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바라보며 내가 스스로 연 날리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조금만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될 것을, 나는 참 무식하게도 그걸 계속 손에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조금만 손에서 놓으면 되는 것을, 그땐 그걸 깨닫는 것이 참 쉽지가 않았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와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늘 곁에 두려고만 한다. 조금은 놓아주어야 할 상황에서도 놓아주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게 싫은 건지, 그 사람과 나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항상 날아갈까 두려워 놓지 못한다.
그 날, 아버지는 집으로 가기 전 하늘 높이 떠있는 연의 실을 끊고 그 연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셨다. 그토록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던 것이 날아가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날아가는 연을 보고 있는 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 날이 내가 연을 가지고 논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나의 연도, 언젠가 보내줄 때가 되면 그 날처럼 그렇게 쉽게 보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마냥 붙잡아두던 그 사람을 놓아주고,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가 풀린 그때.
아무런 감정 없이, 다시는 보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