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를 샀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로 몇 개 없는 1월 일정을 써보고, 새해 목표를 세웠다. 운동하기, 영어 공부하기, 재테크… 써놓고 보니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세웠던 것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익숙한 목표들이었다. 작년에 왔던 목표들이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온 것을 보니 작년 한 해도 제대로 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올해로 준 중년이 된 나는 시작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기만 한다.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렸는데 나는 왜 그렇게 나이만 처먹었을까? 나이 먹을 때 지혜와 용기도 같이 먹었으면 이렇게까지 소심해지진 않았을 텐데... 달력의 숫자는 바뀌었지만, 나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새로운 것 없는 목표를 세우고, 지겹도록 안정적인 것들만 쫓는 겁쟁이가 돼 있었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나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숙제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절반은 했다고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초등학생 때부터 이 속담은 내 입버릇이 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이 속담을 악용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내 ‘시작’을 지지해 주셨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시작’을 ‘도전’과 같은 의미로 여기셨던 부모님의 교육 방침 덕분에 나는 적극적으로 ‘시작’을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작’만’ 해댔다. 그때의 나에게는 시작 후 겪을 실패와 포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부모님의 지지와 후원을 등에 업고 내가 저질렀던 시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2년 여름 어느 날, 친구와 단둘이서 동대문을 간 일이다.
어린 시절 내 옷장은 모두 엄마 취향으로 채워졌었다. 엄마는 내가 농구 선수 야오밍만큼 크리라 생각하셨는지 옷을 살 때마다 항상 ‘너는 더 클 거니까 오래 입을 수 있게 크게 사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엄마의 손에는 내 사이즈보다 세 치수나 큰 옷이 들려 있곤 했다.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옷에 파묻혀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던 내 모습도 싫었지만, 사실 더 싫은 것은 친구들과의 비교였다.
나이키 신발을 신고, 붉은색 아디다스 저지를 입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잠뱅이와 뱅뱅, 마루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중2병을 심하게 앓던 나는 골뱅이무침 같은 이름의 브랜드들이 창피했다. 철없는 부끄러움에 떠밀려 나는 혼자서 옷을 사봐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코 묻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패션의 메카라고 불리는 동대문에 갔다.
하지만 중2 때까지 늘 첫째 줄에, 겨우 키 160이 된, 누가 봐도 동대문에 처음 와본 티가 역력한, 심지어 교복까지 입고 간 나는 밀리오레와 APM 모든 사장님의 먹잇감이었다.
“ㅇㅇ중학교. 형이야. 형 너 학교 선배야”
“너 찾는 거 여기 다 있어!! 일단 들어와 봐”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고, 나도 모르는 내 취향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 명찰이 달린 교복을 입고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 뒤로도 한 참 뒤의 일이었다. 털이라곤 고작 솜털이 전부인 나와는 달리 그곳의 형들은 바야바처럼 수염을 길렀고, 화농성 여드름이 자리 잡은 내 얼굴 부위에 그들은 피어싱을 채워놓고 있었다. 자칭 형들의 화려한 말솜씨와 겉모습 앞에서 나는 먹잇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나 대신 형들과 얘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두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할인해 달라고 말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할인에 ‘ㅎ’ 자만 꺼내도 흠씬 두들겨 맞을 것만 같았다. 첫 가게에 들어간 지 고작 10분이 지났을까? 내 손에는 찐 파란색의 나팔바지와 빽빽한 줄무늬가 바코드처럼 그려진 반팔셔츠가 들려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적때기들과 그만큼 남루해진 내 옆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초록색 나팔바지를 들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를 파워레인저 블루와 그린으로 불렀다.
그때 산 옷은 이후로 한 번도 입은 적이 없지만, 나는 그래도 지옥과 같은 동대문에서 혼자서 옷을 사냈다는 뿌듯함을 얻었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그 뒤로 나는 옷을 사기 위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동대문을 방문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동대문에 가거나, 혼자 옷을 사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꼭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었지만, 그때 한 번의 시도로 나는 적어도 다른 친구들보다 한 뼘 정도는 빨리 자랐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 뒤로 나는 부지런히 자라서 ‘더 둘러보고 올게요’라는 말을 죄책감 없이 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옷을 사기 위해 처음 동대문을 갔을 때처럼 새로운 것을 얻으려 위험을 무릅쓰던 용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익숙해진 것은 성공의 단맛이 아니라 실패의 쓴맛이었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실패의 맛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시작 자체를 피하게 됐다. 성공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실패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살아온 시간이 요 몇 년간 새해 목표로 나타나고 있었다.
아직 새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마르지 않은 2023년 다이어리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단호한 결심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새로운 것에 기꺼이 뛰어드는 도전정신은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어쩌다 시작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게 된 걸까? 꺾여버린 나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핑계를 대라면 수만, 수천 가지를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 앞에서 고민하고 있자니 중학교 2학년의 내가 생각났다. 될 대로 되라며 동대문을 배회하던 그때의 내가 지금 날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겁 없던 그때 나를 생각하면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린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고심 끝에 펜을 들어 적어놓은 목표를 지우고, 그 옆에 새로운 목표를 적어보았다. 지금까지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새로운 목표들. 낯선 새해 목표들 위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