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대화(Phras D' Armes)는 펜싱에 대한 오래된 은유다. 이 은유는 내게 이런저런 상념을 불러일으키는데, 때때로 나에게 펜싱은 대화보다 자신을 관철하려는 폭력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지를 전달하고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펜싱이란 정말 검을 통한 폭력보다 대화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펜싱을 할 때 목표로 하는 것은 상대를 찌르고 종국에는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찌르고 싶다고 상대를 찌를 수 없다는 데 있다. 지금도 수많은 펜싱 클럽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온다. "빠르다고 해서 찌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 내가 무작정 빨리 찌른다고 해서 상대를 찌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춘 상대를 찌르기 위해서는 상대를 속여야 한다. 그리고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는 상대와 맞춰서 펜싱을 해야 한다. "혼자 하지 마라." 둘 사이에 암묵적으로 통하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상대를 속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게 된다. 그리고 그 춤을 주도하는 사람이, 자신의 리듬 속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사람이 더 승리에 가까워진다.
이건 대화를 통한 설득과도 같다. 어리고 유약한 상대방이 아닌 이상, 논리 없이 욕설로 윽박지른다고 해서 내 주장을 설득시킬 수는 없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나씩 상대의 주장을 쓰러뜨려 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다. 당연하게도 펜싱은 둘이 하는 것인데, 나는 이 사실을 잊고 펜싱을 한 적이 많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펜싱은 내 눈앞의 상대와 하는 것이다. 저번 상대에게 통했던 말이 이번 상대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다. 상대에 맞춰서, 항상 현재의 펜싱을 해야 한다.
내가 특히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눈앞의 상대를 두고 다른 상대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키가 작은 상대방과 게임을 뛴다고 하자. 키 차이를 이용해서 상대를 찔렀다고 하자. 그러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키 큰 상대에게는 안 통할 텐데."
키 큰 상대와 할 때는, 혹은 빠른 상대와 할 때는 또 다른 생각을 한다. "빠르게 공격 안 하는 사람이랑 뛸 때는 어떻게 하지?" 이걸 A와의 대화로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B는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 "내 말을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B는 그렇게 안 받아들일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말은 안 하는 게 좋겠어." 이런 말들은 대화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펜싱 같은 것은 없다. 이상도, 정답도 없다. 지금, 현재 눈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통하는 해답이 있을 뿐이다. 그 해답도 내일이면, 아니 이 게임이 끝나면 더는 해답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펜싱을 해야 한다. 눈앞의 소중한 상대와. 서로가 있어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