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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기 2.  잠투성이, 본격 파자마 한 벌

기본기를 모두 갖춘 파자마 한벌이 잠을 마구 불러왔다. 

"나는 파자마다"라고 주장하는 전형적인 파자마 

모든 것은 넷플릭스에서 시작되었다. 

넷플릭스는 요물이다. 넷플릭스 정기 결제를 안 하는 것이 삶을 아름답고 건전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던 1인이었지만, 좀비가 다수 나온다는 <킹덤>이 너무 궁금해 넷플릭스 계정을 살리고 나서, 귀찮아 해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넷플릭스 나비 효과라고나 할까. 

<킹덤>의 마지막 편을 보고 찝찝한 기분-다들 나와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을 벗어나고 싶어 다음엔 뭘 볼까 트위터에서 열심히 검색했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정돈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하는 트친들이 많았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정돈 책을 읽고 크게 실망해 곧바로 예스24 중고서점에 판매한 적이 있던 사람으로서 좀 미심쩍었지만, 한편 두 편 보다가 어느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앗시, 나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라며 호기롭게 옷 행거 앞으로 갔다. (원룸 생활자인 나는 이사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옷장을 사지 못했다) 그리곤 우리 집의 공간을 나보다 더 많이 점유하고 있는 제1 골칫거리인 옷 더미에 달려들었다.


남들은 옷을 정리할 때 참 냉정하게도 잘만 버리던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렸을 때 만나 오랫동안 사귀었지만 최근에 소원해져 어쩔까 고민스러운 7년 된 남친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런 식이다. 티로즈(Tearose) 패턴이라는 꽃무늬 블라우스 한벌을 꺼내 들고 살펴보니 곤도 마리에의 표현을 따라 하자면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샀을 때의 망설임과 신용카드 영수증에 찍혔던 금액, 함께 맞춰 입을 옷이 적당치 않아 고작 세 번밖에 못 입었다는 뼈아픈 후회, 요즘엔 어딜 가도 그렇게 과한 꽃무늬 패턴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는 희소성에 대한 재발견과 거기 따른 소회가 한꺼번에 몰아닥쳐와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건 버리면 안 되겠는데. 얘한테 잘 어울리는 회색 팬츠를 찾아보자.(결국 옷더미 속에서 찾아냄) 앞으로 이 조합으로 오래오래 함께 하자^^' 

이렇게 곤도 마리에의 엄격한 기준으로는 '설렘을 불러오지 않아 버려야 마땅한' 옷들이, 나를 만나면 새 생명을 얻고 다시 행거에 차곡차곡 걸렸다. 나는 생명을 잃고 동네 옷 수거함으로 갈 뻔한 옷들을 살리는 힐러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버릴 옷을 담으려고 준비한 라면 박스는 텅텅 비어있었다. 나는 이쪽 옷더미에서 저쪽 옷더미로 부지런히 옷들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곤도 마리에가 캘리포니아를 떠나 우리 집을 직접 방문하지 않는 한, 해결점은 없어 보였다.


그러다 '집에서 입는 옷' 카테고리에 눈이 갔다. 그렇다.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입기엔 좀 애매한 옷들이 바로 그 카테고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1.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시는 유행 아이템의 자리를 탈환하지 못한 순도 100%의 레드 티셔츠

2. 화장품 브랜드 론칭 행사에서 선물 받았지만 로고가 너무 부각되어 밖에서 입으면 그 브랜드 직원으로 오해받을 만한 면 원피스

3. 하도 많이 입어 목선이 애매하게 늘어졌으나 입으면 정말 편한(당연하지!) 액티브 브랜드 니트(이 브랜드를 안다면 당신은 이미 중년!)

4. 맘에 드는 디자인과 좋은 소재라는 미덕을 한꺼번에 갖췄지만 애매한 곳에 오해할 만한 얼룩이 묻어있는 하와이안 프린트 팬츠

5. 열흘간의 야근+휴일 근무 후, 스트레스가 한계치인 채로 찾은 패스트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핼쑥하고 창백한 얼굴빛과 너무 잘 어울려 산 난해한 프린트의 원피스(며칠간 푹 자고 잘 먹은 다음 입어봤더니 내 피부색과 따로 놀았다ㅠ)

 

그렇다. 이런 옷들이 옷 무덤을 잔뜩 차지하고 있었던 거다. 


옷 더미를 줄이기 위해서 나는 '집에서 입는 옷'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자그마치 30년이 넘은 국산 티셔츠는 최근 개원한 서울기록원에 보내면 그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빨리빨리 성과를 보고 싶어 그대로 버릴 옷을 모으는 라면 박스에 투척했다. 어딘지 불편해서 집에서도 못 입을 것 같은 옷들도 눈물을 흘리며 박스 안에 던져 넣었다. 그러다 보니 박스 두어 개가 꽉 찼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동네 의류 수거함으로 달려갔다.

옷 더미를 버리고 어느 정도 작고 기여운(역시 귀여운이 아니라 기여운이다) 공간이 생기자 갑작스레 행복의 기쁨이 밀물처럼 찾아왔다. 옷을 더 사도 되겠는데? 몇 년 전부터 꿈에 그려 마지않던 '본격 파자마'를 이젠 살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동화책을 넘기다 보면 곰인형을 안은 소녀가 항상 입고 있던, 위아래 한벌로 되어 셔츠 칼라가 달려있고 앞섶이 단추 여밈으로 마무리된 바로 그 '클래식' 파자마 말이다.


본격 파자마를 찾기 위한 여정은 백화점 아이쇼핑과 해외 직구를 거쳐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면서 마무리될 만큼 험난했다, 고 쓰고 싶었지만 사실 매우 간단했다. 동네 패스트패션 매장에 꿈에 그리던 바로 그 파자마가 있었던 것이다. (브랜드는 밝힐 수 없다. 위의 사진을 보고 어느 브랜드인지 대번에 알았다면 댓글을 달아달라. 상품은 없다) 

여기서 잠시 내가 정의 내린 '본격 파자마'의 요건을 알아보자.


1. 위아래 흰색 한벌(엄마가 봤으면 때 탄다고 등짝을 후려치며 남색을 고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2. 스판덱스 함유 0%에 면 100%여서 신축성 하나 없이 뻣뻣한, 19세기 말 유럽 소년소녀가 입었을 만한 고루한 소재(입어보니 적당히 불편했다)

3. 환자복을 단번에 연상시킬 정도로 정직한 파자마 디자인(절대 밖에 입고 나갈 수 없는 스타일)

4. 지퍼나 찍찍이 같은 현대 물질문명을 거부하는 단추 여밈(실제로 입어보니 단추 채우다 졸음이 달아나기 일쑤였다)

5. 장식이라고는 셔츠 칼라의 바이어스 테이프 장식뿐(그 옛날 미국 경제 공황 당시의 옷이 떠오르는, 바로 그것)


여기까지 읽고 나서 이 작가의 정체는 무엇인가, 저번에는 잼 하나 언급하려고 이비인후과 방문 얘기를 구구절절 쓰더니 이번에는 파자마에 대해 말하려고 넷플릭스의 유해성에 곤도 마리에까지 걸고 넘어가나 의아할 것이다. 그렇다. 실제로 만나보면 그다지 말이 없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1인이지만, 존경하는 작가로 코니 윌리스를 꼽는 사람이 바로 저란 말씀. 그러니 좀 이해해 주시라고 간곡하게 말하고 싶다. 


가슴 두근대며 파자마를 입은 첫날,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다. 심지어 불도 켜 놓은 채.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 든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그전에 '집에서 입는 옷'을 잠옷 대신 입었을 때는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아니, 일찍 잠이 들면 억울했다. 트위터 덕질 계정에 접속해 우리 최애(最愛)의 방송 장면을 착즙하며 찬양하는 트윗을 쓰다가, 추리 소설의 범인이 궁금해 한장두장 책장을 넘기다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가끔은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저 ㅇㅇ를 그때 해치웠어야 했는데(필자 주: 브런치라 순화했습니다. 트위터 버전은 다릅니다)' 억울해하며 과거를 반추하기도 했다. 바람이 견딜 수 없이 투명하면 그 옷 그대로 나가 집 앞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집 안과 집 밖의 구분을 짓지 못하는 과도기적 차림새였던 거다.

'집에서 입는 옷'을 정의 내리기 위한 도해

하지만 '본격 파자마'는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한 옷이다. 보는 순간 누구든 "와, 저거 파자마잖아?"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다. 그런 파자마 차림으로 바깥을 나가는 것은, 그닥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나로서도 좀 많이 껄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신축성이 1도 없는 저 파자마를 입는 순간 온몸의 활동이 부자유스러워지면서 침대에 눕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가 없다. 기분 탓인지, 파자마를 입으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 잠을 자는 것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다가 스르르 꿈속으로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밤 12시 취침, 아침 7시 30분 기상이라는, 내 인생 최초의 아름다운 수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연 좋은 현상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밤새워 몰두하던 덕질에서 멀어지고 읽지 못한 추리소설은 침대 옆에 그대로 있으며 이불 킥하며 과거를 후회하는 일도 없어졌는데,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푹 잔 온화한 표정의 나를 거울 속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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