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이 나를 인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된 항로는
결국 또 다른 나의 길이 되어
나를 데려다 놓는다.
에미레이트는
내 마음속 일 순위가 아니었다.
사실 두바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던 때였다.
어느 날 여행을 다녀온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 만난 한국인 사무장님 이야기를 꺼냈다.
두바이가 생각보다 인상적이었다며,
승무원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곤 기내 듀티프리에서 샀다는
에미레이트 로고가 새겨진 시계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 시계에 내 시간들이 담기게 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항공사는
내 목표가 아니라고 둘러댔다.
청소년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나는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고,
그때조차 이미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바이라니.
웃음만 났다.
정해진 루틴의 회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문득 다시 날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싱가포르 항공이었다.
오픈데이가 열린다는 소식에 나는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매주 주말마다 날아왔다.
퇴근 후 비행기를 타고,
영어 인터뷰를 준비했다.
승무원이 되기도 전에 이미 승무원만큼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첫 오픈데이에서 나는 처참하게 떨어졌다.
간절함이 나의 준비보다 훨씬 앞서가 버렸던 것이다.
싱가포르는 나를 품어주지 않았다.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눈에 들어온 공고 하나.
에미레이트.
어디선가 낯익은 심벌.
웃기게도 가장 먼저 내 손목부터 보게 됐다.
엄마가 선물해 준 그 시계에 있던 로고였다.
여전히 내 이상은 싱가포르였지만,
경험 삼아 지원해 보라는 말에
나는 다시 준비했고,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간절하되 조급하지 않았고,
담담했지만 서툴지는 않았다.
시험장의 분위기조차
정답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답을 만들어
가는 분위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이 회사의 방식과 닮아 있었다.
안전 매뉴얼을 제외하면 기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서로 함께 해나가는 것.
그래서 우리는 매 비행마다
왜 함께 비행해야 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원하고 선택한 길로만
인생이 흘러가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은 꼭 내가 바라던 항로로만
나를 데려가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처럼, 그저 스쳐갈 거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10년이 라는 내 시간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에미레이트는 내가 가장 원하던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가장 많이 성장하고 있는 자리이다.
인생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라,
한 번쯤 방향을 틀어보는 용기를
지켜보는 여정이다.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면,
혹은 원하는 항로로 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괜찮다.
인생이 당신을 데려갈 곳은
생각보다 더 의미 있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