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의 시작은 브리핑에서

by 구름 위 기록자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는 말을 믿는다.


그 믿음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브리핑의 시작이다.


브리핑에서부터 총괄하는 시니어(사무장)의
농담 한마디, 웃음 한 번으로
그날의 브리핑 룸을 밝혀주면
모두의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진다.


제아무리 새벽 3시라 해도
그 공간에는 금세 활기가 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소곤거리며
그 진실을 확인하듯 말한다.


“역시...사무장님이 좋으니까 분위기가 다르다, 그치?”


특히 새벽 브리핑의 얼굴들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창밖처럼 어둡다.

모두가 가장 편안했을 밤의 자리,
내 뒤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을 아이,
보고 싶어 꾹 참고 나온 반려동물의 품을
잠시 내려두고 이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최근 유난히 인상 깊었던 한 사무장의 브리핑이 있다.
그는 우리에게 제비뽑기를 하자고 했다.
종이 안에는 브리핑에 함께한 크루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흡사 마니또 같은 게임이었다.


새벽의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우리는 괜히 설렜고,
게임 같은 방식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사무장님이 말했다.


“자, 너희가 뽑은 종이에 적힌 이름의 동료에게
오늘 커피 한 잔을 만들어줘도 좋고,
콜벨을 대신 가줘도 좋아.
안전과 각자가 맡은 책임을 제외하고,
오늘 하루 작은 친절을 하나씩 해보자.”


작은 종이 한 장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르기 시작했고,
오늘 하루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작은 고민을 하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나는 내가 뽑은 이름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며
기내에서 그녀를 위해 카푸치노 한 잔을 만들었다.
우유 거품을 올리며,
그 커피를 받았을 그녀의 기쁜 얼굴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그날,
내 마니또는 퍼스트 클래스까지 와서
서툰 발음으로 “힘내요”라는 한국 말을 건네며
초콜릿 하나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마치 동녘에 햇살이 번지듯,
비행 동안 우리의 얼굴도
그렇게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다.


물론 그날의 비행도 그 분위기 속에서
안전하게 잘 마칠 수 있었다.


또 다른 기억 속의 좋은 브리핑에서는
한 사무장님이 직접 구운 쿠키를 들고 오셨다.
브리핑 룸은 금세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찼고,
그녀는 그 향기만큼이나 온화한 미소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녀는 하나하나 안전 수칙과 매뉴얼을 짚어가며
이번 비행에서 우리가 중점적으로 가져가야 할 방향을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 우리 긴 시간을 같이 보내겠지만
각자 맡은 일을 힘내서 잘 해주면
오후 12시 전에 돌아올 수 있어.
그러면 너희는 브런치 갈 수 있고,
나는 우리 강아지랑 오후 산책을 갈 수 있겠지.
그러니까....같이 힘내보자.”


물론 어떤 브리핑에서는
이런 말들로 시작되기도 한다.


-너희가 이걸 안 하면 리포트할 거야.

-여기에 있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해.
-너희가 선택해서 온 거니까, 불평하지 말도록.
-승객은 왕이야, 얼마를 냈는 줄 알아야 해.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말일 수는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시작된 비행은,
아직 이륙도 하기 전에 모두가 이미 지쳐 있다.


그리고 팀워크가 전부인 이 직업에서
그 방식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비행은 이륙 전에 이미 결정된다.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미 팀이거나 아니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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