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까지 안아줄 때, 비로소 나를 사랑한다.
비행기 안, 휴식 시간이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기내 영화 채널을 넘기다 ‘인사이드 아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영화’라고 꼽는 작품.
“이 나이에 디즈니 채널?” 하고 웃었지만, 손은 이미 재생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영화는 13살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안에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처음 봤을 땐, ‘슬픔’이 못마땅했다.
굼뜬 움직임에, 건드릴 때마다 주인공을 울게 만드는 존재.
심지어 본부를 이탈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자, 화가 나 TV를 꺼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보게 됐다.
이번엔 끝까지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나를 이루는 데 불필요한 감정은 하나도 없다는 걸.
슬픔은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감정이었다.
울음조차도 나를 자라게 하는 물과 거름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기쁨’과 ‘버럭’만 인정하며 살아온 것 같다.
기쁨은 나를 살아가게 하고, 버럭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했기에.
슬픔은 약한 사람의 감정이라며 밀어내고, 늘 웃고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슬픔은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해서 오지 않는다.
그것도 나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고, 영감이 되며,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를 느끼게 하는 통로가 된다.
며칠 전, ‘외로움’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글을 읽은 동생이 조심스레 내 안부를 물었다.
그 순간, 웃음이 났다.
누군가 내 감정을 귀하게 다뤄주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안다.
내 감정 컨트롤 본부 속 ‘슬픔이’에게도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걸.
내가 슬픔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말이다.
그때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그 순간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게 바로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내가 슬프면 글을 쓸 것이다.
그게 내가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안의 ‘슬픔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방법이니까.
혹시 아직 ‘인사이드 아웃’을 보지 않았다면,
당신의 ‘슬픔이’를 만나러 한 번쯤 떠나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