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이름 이야기

by 바로코

* 이미지 출처: Image by tomwieden from Pixabay



이틀 전 교회 친교 남자분들 테이블에서 이름 이야기들을 하시길래 나도 용기 내어 이곳에 적어본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지만 나의 영어이름은 Anna였다. 미국 시민권을 딸 때 바꾸려 했으나 동생과의 선서식 날짜 조정 관계로 결국 영주권 이름 그대로 쓰게 되었다. 인터뷰하시는 분이 법원 가면 쉽게 바꿀 수 있다고는 했는데 막상 바꾸려니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 결국 이마저도 포기했다. (남은 기회는 내 인생에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결혼뿐)


그래서 사실 시민권을 딴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굳이 나를 Anna라고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원래의 이름을 감추기 위해 가끔 사용하긴 하지만, 보시다시피 나에게는 일본식 닉네임이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 이름으로 정하게 된 사연이 있어 정리 겸 대학 시절과 미국 생활 초반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다녔던 대학에 어학교육원이 있었고 섬기던 교회에는 영어로 드리는 외국인 예배가 있었다. 나는 이 두 군데를 동시에 다녔는데 한 캐나다 출신 원어민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어학교육원 수업을 이분과 처음 시작하게 된 날, 출석을 불러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난 죽었다 깨나도 한국어 이름 못 외우니까 영어 이름 당장 알려주세요!" 이러시는 거였다. 출석 명단이 적힌 종이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얼른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안나'라는 이름 외에는 딱히 좋을만한 이름이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나의 한국어 이름 옆에 나는 또박또박 Anna라고 적었다. 그러자 그걸 보시는 선생님께서 "오~애나! 굿 네임!" 이렇게 외치셨다. 순간 나는 현타가 왔다, '아니, 안나는 어디 가고 애나는 또 뭐야?'


내가 이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음악학도로서 안나라는 이름을 음악사를 통하여 몇 번 접한 게 다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안나로 불리기 기대했었지만 영어식으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읽혔던 것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난 '애나'가 되었다.


사실 그전부터 교회에서든 학교에서든 서로 인사하며 지내던 사이로 영어이름을 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께서는 나의 한국어 이름을 전혀 모르셔서 머뭇거리시곤 하셨는데, 애나가 되고 나니 그제야 나를 거리낌 없이 부르시는 모습을 통해 이름이 이래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미국을 왔고 무료 ESL 클래스를 다닐 때에도 나는 Anna로 나 자신을 소개했었는데, 이게 스페니쉬 계열로 가게 되면 Ana라고도 표기하곤 해서 어떤 분들은 n을 하나 빠자 먹고 나의 닉네임을 표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언어 간의 표기법의 차이일 뿐 나에게는 노 프라블럼!


시민권 인터뷰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이 'Anna + 나의 원래 한국어 이름 + Kim' 이렇게 멋지게 바뀔 거라고 부푼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앞서 말했던 사건(?) 때문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게다가 반납했던 영주권 카드에 나의 first name이 띄어쓰기 적용되는 바람에 엉망징창이 되어 사실 지금까지도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홍길동을 예로 들자면 Gildong이 되어야 하는데 Gil Dong 이렇게 나와버렸다는 거)




이름이 이렇게 어찌 됐든 간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일단 신분이 해결된 것만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 나를 가급적이면 애나보다는 '바로코(バロコ)'라고 불러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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