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이 최상의 시간이로다

수많은 인생의 여정 가운데 처음으로 경험했었던 그분의 놀라운 섭리

by 바로코

한국은 잘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면 하객들에게 주는 순서지가 있다. 사정과 형편상 입관예배와 발인예배를 따로 드리는 경우도 있고 그냥 한 번만에 예식을 끝내는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 순서지에는 교회의 주보와 같이 장례예배 순서와 광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인의 간단한 약력이 적혀 있다.


문득 나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해 본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까 남은 유가족은 누가 누가 될 것인가 등등.... 그러면서 약력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만약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틀리게 적는 건 아닐까라고. 그래서 유언장과 더불어 미리 작성해 버릴까라는 마음도 얼핏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사람들이 "미국 언제 몇 살 때 왔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나이는 기억 안 나고 대학 졸업하고 왔어요"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이는 그렇다 치고 사실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왜냐하면 학점이수를 다 마치고 대학 4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럼 "대학 4학년 때 왔어요"라고 하면 될 법도 한데, 혹시나 한국에서 학부를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채 미국에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고 오해받을까 봐 이렇게 대답한 적은 없다. 여하튼 이제는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이때의 기막힌 타이밍을 떠올려보면 진짜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크게 간섭하셨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때의 썰을 잠시 풀어보자면, 4학년 1학기가 되면 대부분 느슨해지고 수강하는 과목들도 얼마 안 되는 게 보통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한꺼번에 몰아서 많이 듣고 싶었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그 해에 미국을 갈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던 상황이었고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수강신청을 해서 결국 1학기를 동기들과는 다르게 속된 말로 빡세게 해서 마무리지었다.


그러다 보니 2학기가 되자 벌써 이수해야 할 학점을 이미 넘긴 상태. 미국행 날짜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자 나는 전공 특성상 내가 불참해도 나의 졸업연주는 할 수 있기에 연주자들과 미리 맞춰보고 또 나의 졸업장을 대신 받아줄 친구까지 정해두었다. 그리고 10월 초 마지막 수업을 잘 마무리한 뒤 무사히 미국행 비행기로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사정상 어쩔 수 없었지만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너무나도 아쉽다. 줄업가운도 못 입어보고 학사모도 못 던져보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선후배와 예쁜 캠퍼스를 배경으로 졸업식날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다 미국에서 안정된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준 거라 어떻게 보면 감사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어차피 세월 지나면 다 잊혀지는 것들이고 비록 졸업식은 참석 못했지만 졸업을 4년 만에 무사히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쉬움보다는 고마운 마음이다.


가군으로 지원하여 합격했었던 K국립대에 갔었더라면 나는 어쩌면 꼴찌로 졸업했거나 중도에 포기했을 수도 있다. 이거 하나만 놓고 봐더라도 그저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이다. 이와 더불어 앞서 언급했던 4학년 1학기 수강신청은 정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국 행해졌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나도 뭐 남들처럼 편하게 안 하고 싶었겠냐만은 그래도 그때 그 순간만큼은 미국행이 정해졌든 아직 미정이었든 모든 걸 빨리 끝내고 정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국은 그것이 나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해서가 아닌 곧 다가올 미래를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신묘막측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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